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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기숙사 식권 구입 의무화, 골병드는 대학생

대학교 기숙사는 요즘 같이 방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기숙사를 이용하게 되면 더 이상 방 문제에 대해서는 신경을 꺼도 되니까요. 물론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대학교를 휩쓴 상업화의 물결은 기숙사도 삼켜 버린지 오래입니다. 지난해 보도된 한국사학진흥재단의 에듀21 사업 결과는 이 사업을 통해 건축된 기숙사비가 기존 기숙사비보다 평균 2배 이상이나 올랐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말이 평균 2배이지 무려 3.5배나 올린 대학도 있습니다. 고려대는 학기당 222만원, 국립 부산대는 198만원짜리 기숙사까지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 대학은 2인실도 107만원, 4인실도 86만원이라고 하네요. 기존 기숙사 3인실 기준 40만원에 비하면 2~3배나 올랐습니다. 대학 주변 원룸보다도 비싼 수준입니다. 

왜 이렇게 기숙사비가 올랐을까. 대학들이 기숙사를 지을 때 민간자본을 끌어들였기 때문입니다.
민자로 기숙사를 짓는 대신 사업을 맡게 되는 민간 사업자가 불과 20년 안에 원금을 포함한 이자, 이윤을 얻어내려고 하니 기숙사비가 대폭 오를 수밖에 없는 겁니다. 대학이 기숙사를 짓는다는 생색은 내면서 업자에게 대학생들과 학부모들을 상대로 장사를 시키겠다는 셈이죠. '에듀 21' 사업 자체가 사립학교에 대한 민간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계획된 거라고 하지만, 이건 아닙니다.

지난 2008년 완공된 서강대 민자 기숙사 곤자가 국제학사 전경. 2009년 당시 서강대 민자 기숙사 비용은 한 학기 6개월간 272만원(2인실 기준·식비포함, 보증금 10만원 포함)에 이르렀다. 출처 : 오마이뉴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대학들이 전적으로 민간 투자에 의지할 정도로 가난하지 않다는 것. 1인실에 222만원을 받는다는 고려대는 830여 억원의 건축적립금을 쌓아놓고 있고 숭실대도 347억원이나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숙사 중에는 '식권 구입 의무화' 규정가지 만든 곳이 있더군요. 즉, 기숙사를 이용하려면 식권을 의무적으로 구입해야 한다는 겁니다.

보도를 보니 고려대는 순수 기숙사비 외에 넉달치 180끼 식사 비용 40만원을 한꺼번에 내도록 했다고 합니다.

기숙사가 강의실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학생식당이 바로 코 앞에 있어도 식사를 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기숙사로 돌아와 밥을 먹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기숙사 식권 수십 장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네요.

국립대 기숙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전국 37개 국립대학 185개 기숙사 가운데 단 9곳만이 기숙사비에 식비가 포함돼 있지 않은 현실. 기숙사비에 식대가 포함된 부산교대는 한학기 식대 비용이 72만원, 춘천교대는 67만원이나 된다는 내용이 밝혀져 있더군요.

한 대학 구내식당 4천5백원짜리 점심식사. 출처 : 오마이뉴스


이런 상태라면 기숙사에 들어간다고 해도 전혀 기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학교 측의 해명은 예상했던 대로였습니다.

"외부 업자에게 식당 운영을 맡겼는데 적정 수입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대학은 아직까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편의시설을 늘리고 이익을 창출하는 게 대학의 책무라고요. 그렇지 않죠. 대학은 기업이 아닙니다. 우리는 대학을 '상아탑'으로 불러왔습니다. 대학은 연구를 하고 교육을 하는 곳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기숙사비 문제는 물론 등록금이나 전형료 문제까지 잘 풀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등록금 천만원 시대. 기숙사 식권까지 학생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니... 정말 씁쓸합니다.

박정호 기자 트위터 -> http://twitter.com/JUNGHOPARK 우리 트친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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