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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평화 원하는 국민이 적? 씁쓸했던 조갑제 강연

어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의 강연에 다녀왔습니다. 매서운 한파가 몰아쳤는데도 강연장은 2백 명이 넘는 보수단체 회원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조 전 대표는 '연평도와 2012년'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는데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을 비판하면서 우리나라가 북한의 도발을 강력하게 응징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강연 중 조 전 대표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폭격하지 않는 이유는 서울시민 중 30%가 북한 편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조 전 대표는 김정일 위원장이 서울을 폭격하면 30%의 자기 편을 죽이는 것이기 때문에 서울을 절대로 폭격하지 않을 거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한국은 내전적 구도라고 주장했습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가 지난 4월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웨딩홀에서 국민행동본부 주최로 열린 '천안함 사태 관련 긴급 강연회'에서 강연하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결과적으로 북한 편을 들려는 30%의 세력이 있습니다. 어제 누가 이런 농담을 했습니다. 이건 농담입니다. 자기는 김정일이가 서울을 절대로 폭격 안 할 거라고 생각한데요. 서울을 폭격하면 30%의 자기 편을 죽이는 것이기 때문에 폭격 안 할 거래요. 이런 농담이 나올 정도니까 한국은 내전적 구도입니다. 다만 말로 하는 내전적 구조죠."

농담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가슴 아픈 말이었습니다. 북한 편이 있어서 김정일이 폭격을 하지 않는다니. 너무나 황당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듣고 있던 보수단체 회원들을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어 조 전 대표는 민주당과 민노당 등 야당을 향해 북한을 편들고 있는 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조 전 대표는 "민주당과 민노당을 대한민국의 적으로 규정해야 한다"며 "사물을 어떻게 보느냐 해석에 따라서 대책이 달라진다"고 말했습니다.

"민주당, 민노당을 정치적 파트너라고 보지 말고 적이라고 봐야 합니다. 우리가 교전 중인 적을 사사건건 편들면 그게 적이죠. 교전 중인 적을 편들면 적이라고 간단하게 규정해야 합니다."

연평도 포격과 한미연합훈련으로 한반도에 전쟁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지난 11월 28일 밤 서울 종로2가 보신각앞에서 열린 '전쟁반대 평화기원을 위한 시국기도회'에서 대학생들이 '그래도 전쟁은 아니잖아요' '우리에건 전쟁이 아닌 평화가 필요합니다'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권우성


섬뜩했습니다. 야당과 국민을 적으로 몰아가는 말을 아무렇지도 하는 조 전대표와 이에 호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비이성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평화를 외치는 사람들을 쉽게 적으로 매도하다니.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어떻게 '적'으로 규정될까요? 남북 모두를 공멸로 몰아가는 군사적 대립은 사라져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조 전 대표는 자신이 정한 내년도 4자성어가 '일전불사' '종북박멸'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북한이 다시 도발하면 전쟁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내년의 4자성어는 '일전불사'다. 하나 더 붙인다면 '종북박멸'이죠 '일전불사' '종북박멸'이죠. 이걸 써가지고 집에 붙여놓고 애들한테 한자도 가르칠 겸 읽히고 '일전불사' '종북박멸'."

그러면서 조 전 대표는 "사람이 위험하게 살아야 된다, 위험하게 살아야 아주 스릴있게 사는 거고 위험하게 살아야 자기의 모든 능력을 다 쏟아붓는다"고 덧붙였습니다.

"대한민국은 위험하게 살아야 될 나라입니다. 행동도 과감해야 합니다. 너무 조심하게 하면 이룬 것 없이 보내게 됩니다. 내년도 위험하게 살면서 과감하게 행동합시다."

18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진보연대, 민주노총, 전농, 빈민연합, 한대련 등이 주최한 '민중생존권 쟁취, 이명박 정권 퇴진 전국민중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전쟁반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권우성


조 전 대표는 남북 군사적 긴장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무시한 채, 평화를 바라는 야당과 국민을 북한 편을 드는 적이라고 비판하며 전쟁불사를 외쳤습니다.

씁쓸했습니다. 조 전 대표의 논리라면 저도 적이겠죠. 지금 정부의 강경 일변도의 대북정책은 여당 내에서도 비판이 나올 정도로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 가고 있습니다. 한반도 주변 국가들의 남북 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고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화입니다. '내전적 구도' '종북박멸' 운운하면서 남남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남북 관계나 우리 내부 문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평화가 답이고, 밥이라는 것은 전 세계 역사를 봐도 쉽게 알 수 있죠. 하지만, 어제 조 전 대표 강연에 모인 분들은 이런 진리를 외면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한 순간에 '적'이되서 그런지 강연을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은 더욱 더 춥게 느껴졌습니다.

양을쫓는모험(박정호) 트위터 주소 -> http://twitter.com/jungho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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