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사회 이야기

불교계가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에 뿔난 이유

어제는 일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인 동지였습니다.

24절기 중 스물두번째인 동짓날을 맞아 대한불교조계종 전국 3천여 개 사찰에서는 동지법회가 열렸는데요. 스님들과 불자들이 동지팥죽을 봉양하는 것은 여느 동지 때와 같았지만, 올해 법회의 내용은 조금 달랐습니다.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도 동지법회가 열렸는데요. 2천여 명의 조계사 신도들은 묵은 해의 액운을 보내고 새해의 밝은 기운을 받아 건강하게 지내자는 의미로 김이 모락 모락 나는 동지팥죽을 나눴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지 토진스님이 법문을 말씀하시더군요.

토진스님은 동지와 동지팥죽에 대한 의미와 뜻을 한참 말씀하시더니 갑자기 정부와 여당을 향해 쓴소리를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에서 민족문화를 푸대접하고 그 가치를 잘 이해 못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불자들이 4대강 사업 중단과 새해 예산안 철회 등 이명박 대통령의 사죄를 요구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지난 8일 한나라당이 강행처리한 2011년도 새해 예산안에서 '템플스테이' 예산이 삭감된 것을 지적한 거죠. 단순한 착오에 의한 삭감이 아니라 불교계와 마찰을 빚어왔던 정부와 여당이 종교 편향적 입장에서 이 예산을 삭감했다는 주장입니다.

이어 토진스님은 청와대 인근에 자리한 통일신라시대 불상 석조여래좌상을 언급한 뒤, 집주인인 이명박 대통령이 동짓날을 맞아 청와대 뒤에 있는 부처님 앞에 팥죽이라도 봉양했으면 좋겠다며 종교 갈등을 불러온 이명박 정권을 꼬집었습니다.

"청와대 뒤에 있는 부처님 앞에 이명박 대통령이 한번이라도 올라가봤나 모르겠네요. 내일 아침에 집주인이 뒤에 모신 부처님에게 가서 팥죽이라도 한 그릇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청와대 부처님은 팥죽 한 그릇이라도 드시려나, 쫄쫄 굶으려나 모르겠네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민족문화 보호정책을 외면하고 종교편향을 자행하는 이명박 정부 규탄 법회'에서 조계사 주지 토진스님이 법문을 설파하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토진스님은 불자들은 함께 '종교차별정책 중단, 서민복지실현'이라는 피켓을 들고 "민족문화 외면하는 한나라당 반대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이명박 정권의 종교 편향성을 비판했습니다.

조계종도 미리 배포한 동지법회 법문을 통해 "현 정부는 불교계의 민족문화유산 보존, 전승 노력을 마치 특정종교에 특혜를 베풀어 주는 것처럼 생색을 내왔다"며 "이 같은 정부와 여권의 태도는 기독교원리주의에 입각한 종교 편향적 시각에서 비롯된 것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조계종은 "민족문화유산을 계승하고 선양하는 활동을 특정 종교에 대한 특혜로 폄하하는 태도를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불교계는 현 정부나 여당과는 일체의 대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법회가 끝난 뒤 만난 신도들도 이명박 정권의 종교차별과 내년도 서민 복지 예산 삭감을 지적하더군요. 60대의 한 신도는 "이명박 대통령이 아무래도 불교가 아니라 기독교이기 때문에 차별이 있기 마련이고 서민복지도 더 약해지고"라고 말했습니다.

불자들이 4대강 사업 중단과 새해 예산안 철회 등 이명박 대통령의 사죄를 요구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조계사를 나서는데 입구에는 여전히 정부와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조계사 출입을 거부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더군요. 조계사에서는 26일에도 조계사에서 불자들의 이명박 정권 규탄집회가 예정돼 있습니다.

그동안 정부와 불교계가 마찰을 빚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예산안 강행처리로 인한 갈등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 불교계와 정부, 여당. 경찰의 조계종 총무원장 과잉검문, 불교 문화재 훼손 등 이번 정부 들어 발생한 일들이 쌓이고 쌓인 겁니다. 이번 갈등을 풀려면 단지 템플스테이 예산을 보전해주는 조치로 끝날 게 아니라 불교가 느끼고 있는 종교차별적인 요소까지 해결해야 합니다. 정부와 여당이 종교정책을 잘 펴왔다면 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겠죠.

동지팥죽은 참 달고 맛있다고 하던데 어제 조계사에서 본 팥죽은 왠지 씁쓸해 보였습니다.

양을쫓는모험(박정호) 트위터 주소 -> http://twitter.com/junghopark
p.s 제 글이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 모양의 추천 버튼을 꾹 눌러주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