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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시민단체 면담도 거절, 국가인권위원장 맞나

요즘 국가인권위원회가 시끄럽습니다. 유남영, 문경란 두 상임위원이 지난 1일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독단적 운영에 반발해 사퇴하면서 사태는 점점 수렁에 빠지는 느낌입니다.

두 위원은 여당과 야당이 각각 추천한 위원인데요. 그만큼 여야 상관없이 국가인권위원회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셈입니다. 여기에 나머지 상임위원인 장향숙 상임위원도 사퇴를 고려하고 있다고 하니 국가인권위원회 좌초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상황을 불러온 것은 현 위원장의 독단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입니다. 사실 인권위는 합의체 운영을 해왔습니다. 위원장 개인의 의견에 따라 모든 사안을 결정할 수 없는 구조죠.

그런데 현 위원장이 지난달 25일 상임위 결의를 받지 않고도 위원장이 단독으로 전원위원회에 상정을 할 수 있게 하는 운영규칙 개정안을 상정했습니다. 상임위원을 꼭두각시로 만들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위원장 마음대로 인권위를 이끌어 가겠다는 선언이었던 겁니다.

4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 촉구 시민인권단체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이 인권위 7층 인권상담센터를 점거한 채 현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그동안 현 위원장의 취임 이후 인권위가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인권위가 나서서 행정부를 견제했어야 했던 사안은 참 많았죠. 몇 가지 대표적인 사례만 꼽아보면 미네르바 사건이나 PD수첩 사건, 양천경찰서 사건 등은 인권위에서 다루지 않았고 대표적인 인권 침해 사건인 민간인 불법사찰에도 눈 감아 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 위원장의 독단적인 인권위 운영이 보장된다면 앞으로 국가인권위는 유명무실해질 게 뻔합니다. 인권위에서 인권을 말하지 못한다며 인권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지난해 3월 인권위의 정원을 21%나 줄여 인권침해 조사조차 충실하게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운영 방식까지 손보는 것은 인권위를 고사시키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제 시민사회단체 회원 20여 명이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인권위 사무실 점거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4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 촉구 시민인권단체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이 인권위원장 사무실 앞에서 현 위원장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이들은 점거 전 현 위원장의 반인권적 행태를 지적하며 인권위원장이 오히려 인권 수준을 떨어뜨렸다고 비판했습니다. 기자회견 뒤 인권위 건물 7층으로 올라간 회원들은 인권위 직원을 통해 현 위원장에게 항의 서한을 전달한 뒤, 현 위원장이 자진 사퇴할 때까지 자리를 지키겠다고 밝혔습니다.

일부 회원들은 현 위원장과의 면담을 위해 위원장 사무실로 향했지만, 사무실로 통하는 문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문은 열리지 않더군요. 직원을 통해 전해진 현 위원장의 말은 "면담이 어렵다"는 한 마디였습니다.

2001년 출범한 인권위는 우리 사회 인권신장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해왔습니다. 공무원 채용 나이제한 철폐, 호주제 폐지, 인종차별 용어 '살색' 명칭 시정, 체벌 금지 권고가 대표적이죠. 하지만 9년이 지난 지금 국가인권위는 목소리를 내야 할 상황에서 침묵하고 권력의 눈치만 보는 '국가이권위'가 되어 버렸습니다.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 지난 2009년 11월 13일 오전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남소연

현병철 위원장은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인인권을 위한 단체의 장이라면 시민단체와 만나 의견 교환도 하고 토론도 해야 합니다. 또한 그동안 권력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에 대한 입장도 밝혀야겠죠. 독단적인 인권위 운영에 대한 해명도 필요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현 위원장이 인권위원장직에 적합하지 않다면 자리에서 물러나면 되고, 시민단체 등의 비판이 잘못됐다면 그대로 자리를 지키면 됩니다.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현 위원장이 국가인권위원장이 맞다면 지금이라도 대화의 문을 열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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