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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청와대 대포폰' 사찰 개입 의혹, 특검으로 밝혀야

어제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을 지켜봤습니다. 김황식 총리의 첫 대정부질문 출석이라서 더 관심을 모았는데요. 김 총리는 시작부터 사과만 두번하더군요. 

비판 여론을 불러온 노인 지하철 무임 승차 반대 발언에 대해서는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해서는 "사과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김 총리는 이명박 정부의 핵심 정책인 4대강 사업과 부자감세 문제 등은 적극적으로 옹호했습니다.

김 총리는 "운하가 되려면 수심이 6미터 이상 유지돼야 하는데 그런 구간은 전체 26%밖에 되지 않고 한강과 낙동강 연결 계획도 없다"고 4대강 사업이 대운하 사업 준비단계라는 야당과 시민단체의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또한 김 총리는 부자감세에 대해서도 "감세는 어떻게 하면 경제를 활성화시켜 모든 국민들이 잘살게 하는 기반을 만드느냐 하는 조세정책의 문제다, 무조건 감세를 철회해야 한다고는 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석현 민주당 의원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국무총리실 산하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 정치인 불법사찰에 대해 청와대에 보고한 문건을 공개하며 질의하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그런데 놀랄만한 일은 그 다음에 나왔습니다. 이석현 민주당 의원이 사찰 결과 청와대 보고용 내사보고서를 공개했기 때문입니다.

이 의원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작성한 A4 2장짜리 문건을 공개하며 '청와대가 불법사찰에 적극 개입했다는 물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멀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사진에 찍힌 문건을 보니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청와대에 사찰이나 내사 내용을 보고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씁니다.

이렇게 물증을 들고 이 의원이 질의하는데도 이귀남 법무장관은 이 내사보고서의 확보 여부는 밝히지 않은 채 '공개된 문건들은 모두 확보해 조사했다'고만 말하더군요.

이석현 민주당 의원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국무총리실 산하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 정치인 불법사찰에 대해 청와대에 보고한 '남00 관련 내사건 보고'라고 적힌 보고서를 공개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또한 이 의원은 청와대가 민간인 불법사찰에 남의 명의를 도용한 이른바 '대포폰'까지 동원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장아무개 주무관이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영구 삭제하기 위해 수원에 있는 전문업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대포폰으로 통화한 사실을 검찰이 알아냈다는 겁니다. 이렇게 대포폰이 5개 발견됐는데 이는 청와대 행정관이 공기업 임원 명의를 도용해 만들어 비밀통화를 위해 지급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이 법무장관은 대포폰 존재 여부를 인정하더군요. 청와대가 대포폰을 민간인 불법사찰 등을 위해 지급했다는 겁니다. 검찰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언론에 전혀 알리지 않은 셈이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관은 검찰이 대포폰 관련 조사 내용을 덮었다는 이 의원의 주장은 부인했습니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 참석해 이석현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지난번 민간인 불법사찰 관련 검찰 수사에서는 '윗선'에 대한 수사가 거의 진행되지 않았죠.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윗선' 개입 수사를 미룰 수 없습니다. 청와대 관계자들의 불법사찰 개입 의혹에 불법인 대포폰까지 쓰다니. 통신비밀보호법 등 실정법 위반이죠. 납득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어제 이귀남 법무장관은 지휘권 발동을 통한 민간인 불법사찰 재수사를 검토하고 있지 않고 있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국회 국정조사나 특검을 통해 진실을 밝혀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민간인 뿐만 아니라 여당 의원들까지, 무차별적인 사찰을 감행한 사건을 덮고 갈 수 없습니다. 이렇게 관련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고 있는 불법사찰 '윗선' 개입 의혹을 그냥 두고 넘어가는 것은 '공정한 사회'가 아니죠.

'공정한 사회'에 걸맞은 조치가 필요합니다. '윗선'이건 '몸통'이건 다 밝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