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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중소상인들이 여의도에서 '동시처리' 혈서 쓴 이유

어제 오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전국에서 올라온 중소상인들의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경찰 버스와 의경들에 둘러쌓인 중소상인들은 기자회견 도중 자신들의 사업자 등록증 사본을 찢었습니다. '장사를 할 수 있다'는 증명서인 사업자 등록증을 찢는 것. 이것은 말 그대로 장사를 할 수 없다는 항의의 표시였습니다. 등록증을 찢는 상인들의 마음도 갈기 갈기 찢어졌을 것 같았습니다. 지켜보는 제 마음도 편하지 않더군요.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일부 상인들은  일부 상인들은 손가락을 칼로 찔러 흰색 천에 '동시처리'라는 혈서까지 썼습니다. 천천히 쓰여지는 붉은 글자가 너무 슬프게 보였습니다. 상인들은 혈서를 쓰며 그렇게 울분을 표현했습니다.

'600만 자영업자 다 죽일 셈이냐'는 플래카드 뒤에 선중소상인 대표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기업형 슈퍼마켓, SSM 규제법안인 유통법과 상생법 개정안의 순차처리를 주장하고 있는 한나라당과 혼선을 빚고 있는 국회를 규탄했습니다. 유통법만 통과되고 유통법보다 강력한 상생법은 통과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중소상인살리기네트워크 소속 상인대표들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기업형 슈퍼마켓(SSM)을 규제하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법(상생법)과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동시처리를 요구하며 '동시처리'라고 혈서를 쓰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유통법이 개정되면 전국 1500여개 재래시장 반경 500m 이내를 '전통산업 보존구역'로 설정할 수 있고,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통해 이 구역을 SSM의 등록을 제한하거나, 입점 조건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규제할 수 있습니다.

상생법의 개정안은 대기업이 직영하는 SSM뿐 아니라 대기업 지분이 51% 이상인 SSM 프랜차이즈 점포도 사업조정 신청대상에 포함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개정안에 따라 500m 범위 밖의 중소상인들도 SSM을 대상으로 사업조정을 신청해 해당 SSM의 개점을 미루게 하거나 영업을 중단시킬 수 있습니다.

인태연 전국유통상인연합회장은 "유통법안은 전통시장 500m 안에 SSM이 못 들어오게 하는 법인데 올해 들어 500M 안에 들어와 장사하는 직영점이 거의 없다"면서 "그런데 유통법이 통과되면 마치 상인이 보호되는 것처럼 한나라당이 생색을 내며 큰 소리를 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유통법과 상생법을 한달 시차를 두고 통과시키겠다고 하는데 그 한달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다. 차라리 저희가 한달 기다릴 테니까 유통법과 상생법을 12월 9일에 통과시켜라 하는데 말을 안해요. 할 마음이 없는 거죠."

중소상인살리기네트워크 소속 상인대표들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기업형 슈퍼마켓(SSM)을 규제하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법(상생법)과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동시처리를 요구하며 상인들의 울분을 상징화하는 의미로 사업자 등록증 사본을 찢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또 이들은 서민특위까지 구성한 한나라당을 향해서도 행동 없는 '친서민' 구호는 정치적 술수라며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심판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정식 부산중소상공인살리기협회장은 "한나라당이 실질적 행동은 없이 '친서민'이란 구호만 되풀이한다면 정치적 술수만 부린다고 단정 지을 수밖에 없고, 우리는 당연히 중소상인들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한나라당을 상대로 싸워나갈 수밖에 없음을 밝힌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중소상인들은 SSM 법안이 한-EU FTA에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을 비판하며 '친서민'을 강조하는 정부가 국민 대신 외국의 사정을 봐주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SSM 규제법안이 시급한데도 여당과 야당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느라 점점 시간은 흘러가고 있습니다. 대형유통회사들이 사업조정제도를 피하기 위해 직영 SSM을 속속 가맹점 형태로 전환하고 있는데 상생법이 통과되지 않아 상인들은 사업조정신청조차도 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중소상인살리기네트워크 소속 상인대표들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기업형 슈퍼마켓(SSM)을 규제하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법(상생법)과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동시처리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이건 여야 정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 중소상인들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입니다. 지금도 상계6동에서는 SSM을 막기 위해 주민들이 밤에 불침번까지 서면서 물건을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정부는 물론 여야 가릴 것 없이 '친서민' 정책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친서민'. 좋은 말이죠. 하지만, 행동은 '친서민'이 아니면서 구호만 외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SSM의 폐해는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골목상권의 붕괴, 영세상인들의 고통... 그런데도 약속했던 SSM 규제법안 처리를 뒤로 미루며 중소상인들의 생존권을 외면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여야가 당초에 합의했던 것처럼 유통법과 상생법은 동시 처리돼야 합니다. 그게 '친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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