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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서민 울리는 유명환 장관 딸 '나홀로 특채'

만약 대기업에서 한 명만 채용하는데 뽑힌 사람이 대기업 회장의 딸이라면, 그것도 그 딸이 지원하지 않은 원래 전형을 무효화 시키고 다시 전형을 실시해서 딸을 뽑았다면, 사람들을 뭐라고 할까요?

열이면 열 공정하지 않은 전형이라고 손가락질 할 겁니다. 물론 이런 논란이 일어나기 전에 애시당초 대기업에서도 이런 무리수를 두지는 않겠죠. 그 딸을 뽑아야 하는 상황이라도 최대한 공정하게 보이기 위해 노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논란이 대기업이 아니라 정부 부처에서 일어났습니다. 바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이 외교통상부 5급 사무관에 특별채용된 겁니다. 어제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발표된 FTA 경제통상 전문인력 채용에 유 장관의 딸이 합격했다고 합니다. 보도에 나온  외교부 관계자는 '관계 법령에 따라 공정에 공정을 기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것'이라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더군요.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외교, 통일, 안보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요? 하지만 밝혀진 전형을 들여다보면 분명히 석연찮은 부분이 있습니다.

유 장관의 딸 유 씨는 지난 7월 16일 서류, 면접으로만 선발하는 특채  1차 공고에 지원했지만 쓴 잔을 마셨습니다. 유효기간이 지난 영어 성적증명서를 냈기 때문입니다. 유 씨만이 탈락한 게 아닙니다. 1차 공고에서 지원한 다른 지원자 6명도 서류에서 탈락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입니다. 외교부는 적격자가 없다면서 재공고를 냈는데 원서마감 기간을 늘렸더군요. 그 사이 유 씨는 사용 가능한 영어 성적을 땄죠. 마치 유 씨가 영어 성적증명서를 따기를 기다린 것 같았습니다. 

영어 성적증명서를 제출한 유 씨는 1차 서류전형에 합격했고 다른 두명의 서류 합격자와 함께 면접을 봤다고 합니다. 면접관 5명 가운데 2명이 유 씨의 아버지가 수장인 외교부 간부였습니다. 결과는 유 씨의 최종합격. 하지만, 누가 봐도 공정하지 않은 전형이네요.

1차 전형을 '적격자 없음'으로 무효화 한 것도, 유 씨가 영어 성적을 얻을 때를 기다린 것처럼 전형 기간을 늘린 것도, 일부 면접관이 외교부 간부였던 것도 석연치 않습니다. 장관 딸이 공채도 아닌 특채에 지원한 것 자체가 비정상적으로 보입니다.

이 뉴스를 접한 누리꾼들은 지금 현대판 음서제도(고려시대 특권계층의 자녀를 과거시험 없이 등용했던 제도)의 부활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마침 지난번에 정부가 발표한 행정고시 폐지가 이런 일을 양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들립니다. 행정고시를 폐지한 것이 유 장관의 딸같은 소위 '명문가 자제'들을 위한 게 아니냐는 거죠.

지금 대학가에는 취업 준비 때문에 힘들어 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더 좁아진 문, 그 문을 통과하기 위해 스펙쌓기에 몰두하는 학생들. 대학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입니다.  서민들은 그 문을 통과해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장관의 딸은 손쉽게 특채된다니... 정부와 여당이 강조한 '공정 사회'가 그들만의 리그였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할 망정 허탈함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한 여름에 겨울 코트를 입고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청년고용대책 마련 요구 시위를 하는 청년.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난 고위 공직자들의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세금탈루 등 각종 의혹 목록에 '자녀특채'를 하나 추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것도 위장전입처럼 자녀와 관련된 것이니 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외교부는 유 장관의 특채를 취소하고 당장 대국민사과해야 합니다. 아울러 정부는 다시는 이런 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인사 제도를 더욱 더 투명화해야 합니다. 서민 울리는 '나홀로 특채'는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추가1>  오늘 오전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자신의 딸에 관련된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혔네요. 유 장관은 '아버지가 수장으로 있는 조직에 고용되는 게 특혜 의혹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습니다. 유 장관의 딸도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 공모응시를 취소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늦었지만, 다행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습니다.

<추가2> 외교통상부가 유 장관의 딸 채용을 위해 지난해와 다른 응시자격을 적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네요. 유 장관의 딸을 위해 응시자격 요건을 완화시켰다는 겁니다.

오늘 오후 박영선 언론연대 대외협력국장은 자신의 트위터(@happymedia)에 외교통상부의 특별채용 공고문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정말 지난해와 올해 내용이 다르네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이런 의혹이 다 사실이라면 유 장관이 주장한 '특혜는 없었다'는 발언은 거짓말이 되는 셈입니다.

이번 사태는 사과로만 끝내기에는 너무나 충격적입니다. 자신의 딸을 위한 부정(情)이 부정(正)을 낳았습니다. 유 장관은 모든 일에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검찰 수사를 통해 이번 사태의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외교부가 유 장관의 딸을 위해 응시자격을 바꾸었는지, 바꾸었다면 그 배후가 누구인지, 유 장관은 알고 있었는지, 직접 지시했는지 등을 철저히 국민들에게 밝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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