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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아직도 '죽은 시인의 사회', 카르페 디엠을 들어라

그대로였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10여 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얼마전 수학능력시험 감독을 하게 된 동생을 시험장에 내려주고 마주친 광경에 심장이 멈췄다.

이미 교문 앞은 흥분으로 물들어 있었다. 마치 운동경기 응원전을 펼치듯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선배들에게 손을 흔드는 후배들과 아들, 딸의 손을 차마 놓지 못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은 예전과 똑같았다. 이들이 뿜어내는 열정과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은 어디서나 볼 수 없는 것이었다. 해외 토픽에 나올 만큼이나. 

흥겹겠다고? 아니다. 가장 '살 떨리는' 해외 토픽이다. 대학 입시에 삶을 저당잡힌 학생들에게 1년에 한 번만 허락된 시험이지 않나.

잔인하다. 어른들은 청소년들의 꿈을 빼앗고 대신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주입했다. 대학과 취업 그리고 결혼으로 이어지는 미래의 쳇바퀴에 청소년들을 끼워 넣어 버렸다. 아이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인생과 꿈에 대해 생각해 볼 틈조차 주지 않으니까. 그냥 남들처럼 미래의 쳇바퀴를 돌기 위해 공부할 뿐.

ⓒ 부에나 비스타 픽쳐스

그래서 세상에 나온 지 20년이 훌쩍 넘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1989)는 최소한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영화의 무대인 1950년대 미국 명문 웰튼 기숙사 고등학교는 21세기 한국 고등학교를 닮았고, 대학 입시에 올인한 학생들은 전혀 낯설게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체벌을 하는 모습까지 익숙하다.

영화는 웰튼 고등학교에 새로 부임한 영어교사 존 키팅(로빈 윌리암스)과 그의 학생들의 이야기다. 풀빵 찍어내듯 똑같은 학생들을 대량 생산하는 수업이 아니라 각자의 생김새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키팅 선생님의 교육은 학생들에게 삶의 기쁨을 일깨운다.

첫 수업시간. 키팅 선생은 책상에 앉아서 수업을 기다리고 있던 학생들을 밖으로 불러낸다. 키팅은 학생들에게 지금은 세상을 떠난 선배들의 사진을 유심히 보게 하더니 그들의 속삭임에 귀울 기울이란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학생들에게 키팅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인생의 가르침을 준다.

"여러분들이 잘 들어보면 그들의 속삭임이 들릴 것이다. 자, 귀를 기울여 봐. 들리나? 카르페 디엠. 오늘을 잡아라. 인생을 탁월하게 살아라."

키팅 선생의 목소리를 통해 죽은 사람들이 들려주는 말은 라틴어 '카르페 디엠(carpe diem)'. 지금 살고 있는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이었다. 대학 입시라는 미래에 현재를 저당잡힌 학생들이 순간 순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키팅 선생의 바람이었다.

자신을 '캡틴'으로 부르게 한 키팅은 학생들을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학생들이 주어진 길이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가게 하기 위해 교탁 위에 올라가게 하고 시를 써보라고 한다. 그리고 교과서를 찢으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키팅의 가르침에 감동을 받은 학생들은 '카르페 디엠'을 실천한다. 웰튼 고등학교 출신인 키팅 선생으로부터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모임에 대해 듣게 된 7명의 학생들은 밤마다 학교 근처 동굴에 모여 시를 읽고 노래를 부르며 말 그대로 '오늘을 잡는다'.

키팅 선생의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 ⓒ 부에나 비스타 픽쳐스

그 결과 닐 페리(로버트 숀 레오나드)는 연극 무대에 오르고, 녹스 오버스트리트(조쉬 찰스)는 사랑하는 여학생을 만난다. 수줍은 많은 토드 앤더슨(에단 호크)는 즉흥시까지 읊는다. 삶이 주는 축복을, 자신만의 탁월한 재능을 만끽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축복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규율과 전통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학교의 탄압을 받게 되고 키팅 선생은 학교를 떠나게 된다.

키팅을 보내는 마지막 순간. 책상 위에 올라가 "오, 캡틴 마이 캡틴"을 외치며 눈물을 글썽이는 학생들. '혁명'의 시간은 짧았지만, '카르페 디엠'의 정신은 제자들에게 고스란히 남았다.

올해 수능이 끝난 뒤에도 몇몇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살아야 하는 한국 사회의 비극이다. 21세기 대한민국 학생들에게 '카르페 디엠'은 불가능한 것일까. 언제까지 '죽은 시인의 사회'를 살아가야 할까.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야."

키팅 선생의 말이 가슴을 자꾸 콕콕 찌른다.
 
박정호 기자 트위터 -> http://twitter.com/JUNGHOPARK 우리 트친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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