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사회 이야기

'잠 좀 자자'는 노동자 끌어낸 공권력, 부끄럽다

어제 유성기업에 공권력이 투입됐습니다. 경찰은 충남 아산에 있는 유성기업 농성장에 들이닥쳐 농성을 벌이던 노조원 등 500여 명을 모두 연행해갔습니다. 경찰의 농성장 진입 10여분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로써 유성기업 파업은 종지부를 찍게 됐습니다. 공권력 투입에 대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적절한 조치였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더군요. 적절했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 사태는 우리나라의 후진성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G20 정상회의 등을 개최하며 선진국이 된 것처럼 우쭐대고 있지만, 노동 여건에 대해서 만큼은 후진국이라는 겁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돈을 더 달라고 한 것도 아닙니다. 단지 '잠 좀 자자' '사람답게 살게 해달라'고 주장한 것 뿐이죠. 물론 본청 업체와 하청 업체의 관계, 업계의 상황 등이 얽혀 있겠지만 노동자들의 주장은 인간의 기본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24일 오후 농성 중인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연행하는 경찰. 출처 : 오마이뉴스


먼저 유성기업의 근로 환경을 살펴보죠. 유성기업은 현대자동차에 엔진의 핵심부품으로 불리는 피스톤링을 납품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근로자들은 주간근무(8시~19시 30분)와 야간근무(22시~8시)로 나누어 일을 했는데요. 주간근무조와 야간근무조는 1주일마다 조를 바꾸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1주일은 주간근무만 다음주는 야간근무만 하는 것이죠.

혹시 야간에 일을 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똑같은 시간을 일한다고 해도 힘은 2,3배는 듭니다. 피곤도 더 많이 쌓이고요. 제는 예전 대학 들어가기 전에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해봤었는데 아르바이트비를 많이 받기는 했지만, 힘들어서 오래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보도된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설명도 제 경험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야간근무를 1년만 해도 10년은 늙는다' '피곤이 안 풀려서 야간에 비몽사몽인 채로 일을 한다' 등의 증언이 이어졌습니다. 전문가들은 야간근무가 수면장애는 물론 각종 성인병 발병 위험도 증가시킨다고 경고했습니다.

24일 오후 유성기업 농성을 해산시킨 공권력.


지난 1년 6개월 동안 돌연사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들이 5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솔직히 월급쟁이 중에 누가 월급 많이 받는 것을 마다하겠습니까. 노조가 월급을 깎이더라도 주간 2교대 근무를 주장한 것은 사람답게 살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측은 노조와 주간 2교대 근무를 놓고 협상을 하는 시늉만 했을 뿐, 직장폐쇄로 노조의 공장점거를 초래했습니다. 중재에 나서야 할 정부는 '연봉 7천만 원 받는 사람이 파업을 할 수 있냐'고 몰아세우면서 균형을 잃어버렸습니다. 사실 연봉 7천만 원도 입사한지 30년 된 노동자가 잠 못 자고 밤새 일해서 받는 수당을 다 합쳐야 될까말까한 금액입니다. 하지만 보수언론은 액수만 부각시키며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귀족노조'로 규정하고 파업으로 인한 경제적인 피해만 강조했죠.

24일 오전 유성기업 농성장 모습. 출처 : 오마이뉴스


결국 '잠 좀 자자' '인간답게 살자'는 노동자들의 절규에 대해 사측과 정부 모두 귀를 막은 셈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정부는 노사 협상을 충분히 지켜보지도 않고 성급하게 공권력을 투입해 버렸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렇게 속전속결로 공권력을 투입하는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 등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더딘지 의문입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들어섰다고요? 과연 그럴까요? 선진국은 개인이 행복한 사회, 삶의 질이 높은 사회일 것입니다. 이런 사회를 위해서는 노동자의 건강을 지키는 근무체계, 여가를 보장하는 근로환경이 전제돼야 하겠죠. G20 정상회의를 개최했다고 선진국이 되는 게 아닙니다.
 

p.s 제 글이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 모양의 추천 버튼을 꾹 눌러주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