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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삿대질하며 퇴장까지, 직접 본 예의 없는 국회

어제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국회 교섭단체 연설을 지켜봤습니다.

박 원내대표의 연설은 예상대로 정부의 정책 비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박 원내대표는 중간 중간 여러 차례 물을 마시며 연설문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박 원내대표는 국민들이 취업난, 전세난, 물가난, 구제역 사태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박 원내대표는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에 침입한 괴한이 국정원 직원으로 밝혀져 국제적인 망신을 초래했다고 지적한 뒤, '걱정원'이라는 조롱거리로 전락한 국정원을 바로 세우기 위해 원세훈 국정원장을 즉각 해임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이어 박 원내대표는 국민들이 민생대란 속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개헌놀음에 빠져 있다며 18대 국회에서 개헌이 논의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습니다.

야당의 입장에서는 민심을 전하고 국정 쇄신을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죠. 정부와 여당에서 잘 듣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버릴 것은 버리면 됩니다.

22일 오전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 나선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촬영 : 오마이뉴스 남소연

오늘 저는 어제 박 원내대표의 연설 자체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연설 도중 발생한 볼썽사나운 일에 대해서 제가 본 대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발단은 박 원내대표의 열설 때문이었습니다. 박 원내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3년만에 국가의 기본을 5공 유신시절로 후퇴시켰다"고 말하기가 무섭게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이 소리를 지르며 항의했습니다. 본회의장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큰 소리였습니다.

이병석 한나라당 의원은 "그게 어떻게 유신하고 관게 있는 거냐"면서 "유신시대에는 당신들은 말도 못했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고함소리에 박 원내대표가 발언을 멈추자 본회의장에는 여야 의원들의 말싸움 소리만 들렸습니다. 여야 의원들은 상대방의 얘기는 듣지도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외쳤습니다.

[한나라당 의원] "어디다가 5공을 갖다 붙이고 있어?"
[민주당 의원] "지금도 이명박한테 충성하나?"
[한나라당 의원] "지금 이 정부가 어디가 유신하고 같다는 거야?"

22일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의 발언에 삿대질까지 하며 항의하는 이병석 한나라당 의원. 촬영 : 오마이뉴스 남소연

박희태 의장의 장내 정리 발언 이후 겨우 연설을 이어나간 박 원내대표. 하지만, 박 원내대표가 대한민국 위기의 근본이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에게 있다며 이 의원의 정계은퇴를 요구하자 아까보다 더 격렬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항의가 쏟아졌습니다. 특히 장재원 의원은 박 원내대표를 향해 손가락질까지 하며 항의하다가 연설 도중 퇴장해 버렸습니다. 황당하더군요,

 "이런 모든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동안 영일대군, 만사형통으로 불리며...(한나라당 의원 :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명박 대통령께서 아픔을 참으시고 형님을 정계에서 은퇴시켜 주십시오."

국회의원들의 고함과 삿대질 그리고 퇴장까지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 중에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정말 예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말하는 사람을 방해하는 행위는 기본이 안 된 거죠. 더군다나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들이 모여 있는 국회에서 고성을 주고 받는 것은 상식 이하의 행동입니다.

22일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를 향해 삿대질을 하는 장제원 한나라당 의원.

물론 우리 국민이 그동안 격렬한 몸싸움과 날치기 법안 통과에 익숙해져서 말싸움은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중에 하나가 남의 얘기, 소수의 얘기도 들어주는 거죠. 민주주의 국가 제 1야당 원내대표의 연설을 방해하는 행동과 이를 둘러싼 여야 의원들의 소란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

박 원내대표가 연설을 하기 전날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연설을 했습니다. 김 원내대표는 연설을 통해 "이번 국회에서 국회 폭력을 추방하는 법안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면서 "국민의 힘에 의해 개혁을 강요당하기 전에, 우리 손으로 국회 개혁을 시작하자"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불과 하루 만에 회의 도중 상대방을 비난하는 구태가 또 다시 벌어졌습니다. 답답한 일입니다.

물리적 폭력만 폭력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발언을 방해하는 행위도 추방해야 할 폭력입니다. 국회 선진화는 말로만 되지 않습니다. 모든 국회의원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국회 개혁'같은 거창한 논의에 앞서 서로에 대한 예의부터 갖추기를 바랍니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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