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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친이계의 잔치'로 끝난 한나라당 개헌 의총

어제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개헌 의총 이틀째도 다녀왔습니다.

정말 분위기가 첫날하고 완전히 다르더군요. 첫날에는 13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던 첫날 의총과 달리 오늘 의총은 시작부터 김이 빠졌습니다. 총 171명 중 참석 의원수가 80명도 안 돼 여기 저기 빈자리가 많이 보였습니다.

박근혜 전 대표 등 상당수 친박 의원들은 오늘도 의총장에 나오지 않았고, 어제 자리를 지켰던 일부 친이 의원들의 얼굴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당 지도부는 소속의원의 과반이 참석하지 않은 상황에서 의총을 강행했지만, 당황한 기색은 역력했습니다.

발언 신청자도 몇 명 안 되는 상황. 빈 자리를 보면서 '의결 정족수가 안 돼 개헌을 위한 당내 기구도 못 만들고 끝나겠구나'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한나라당의 개헌논의 이틀째인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개헌논의를 위한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의 참석이 저조하자 안상수 대표를 비롯한 김무성 원내대표, 홍준표 최고위원이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다. 출처 : 오마이뉴스

결국 현장 신청을 받더군요. 의원들에게 문자까지 보내 사흘로 예정됐던 의총을 이틀로 마무리한다면서 참석을 독려했던 김무성 원내대표는 토론 전 의원들에게 발언 참여를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김 원내대표는 멋쩍게 웃으면서 "오늘 일간지에 '발언 신청자가 1명밖에 안 된다'는 기사가 나와서 김을 뺐는데, 현장에서도 발언 신청을 받으니 지금이라도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김 원내대표의 호소 속에 모두 18명의 의원이 발언에 나선 가운데 대부분의 의원들은 개헌 추진을 위한 당내 특위 구성 등에 찬성했지만 이해봉, 이경재 등 친박 의원들과 김세연, 황영철 등 소장파 의원들은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9일 국회에서 열린 의총에서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한나라당 지도부. 출처 : 오마이뉴스

발언을 마치고 나가는 이해봉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첫째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고 전 언론이 보는 시각이 똑같지 않느냐, 왜 이 문제를 끄집어내서 문제로 삼느냐, 누가 책임질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김세연 의원은 "별도의 특위 구성해서 당내 혼란을 가져오는 것보다는 지금 있는 개헌 TF를 활용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친박 의원 뿐만 아니라 중진 의원들 사이에서도 개헌 추진 시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9일 "주류들이 주로 권력 집중 얘기를 하는데 그러면 3년 동안 권력 집중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한 권영세 한나라당 의원.

남경필 의원은 "이미 정치적은 오해를 받고 있고 순수성을 잃어버린 것이 개헌에 대한 추진 동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고, 권영세 의원은 "특위고 뭐고 지금 개헌 얘기하는 것에 마땅치 않게 생각한다, 주류들이 주로 권력 집중 얘기를 하는데 그러면 3년 동안 권력 집중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꼬집었습니다.

하지만 한나라당 지도부는 친박과 일부 중진 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헌 추진을 찬성하는 의견이 다수라며 당내 개헌 특위 구성을 의원들의 박수로 의결했습니다. 처음 의총을 시작할 때는 과반이 안 됐지만, 의결할 때는 90명의 의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로써 한나라당의 개헌 논의는 계속 이어지게 됐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특위 논의에 친박계의 참여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라 한나라당의 힘을 모을 수 있는 개헌 논의가 이루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한나라당이 아니라 친이계를 결집시키는 효과밖에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거죠. 오히려 친이-친박 계파 간의 갈등만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죠. 산적한 현안이 있는 상황에서 여당이 개헌 논의에 집중하는 모습을 국민들이 좋아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국민적인 공감대가 거의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여권의 개헌 드라이브는 논의가 진행되더라도 국민들에게 환영은 커녕 관심도 받기 힘들 겁니다. '진정성이 없다' '정략적인 의도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개헌을 지금 추진하는 것 자체가 무리수라는 지적도 들립니다. 

한나라당의 개헌논의 이틀째인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개헌논의를 위한 의원총회에서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김무성 원내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이틀에 걸쳐 열린 한나라당 개헌 의총은 결국 친이계만의 잔치로 막을 내렸습니다. 당 지도부와 친이계 의원들은 당내 개헌 특위 구성을 밀어붙이면서 가까스로 개헌의 불씨를 살렸지만, 구제역과 전세난 등의 민생 현안 대신 '정치 놀음'에 몰두하고 있다는 여론의 비판은 더 거세질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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