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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김 빠진 한나라당 개헌 의총, '침묵' '불쾌' '생소'

어제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의 개헌 의총에 다녀왔습니다. 의원들의 참석률이 생각보다 높더군요. 총 171명 가운데 125명이나 참석했습니다. 의원들 자리가 모자라 기자들이 앉아 있던 자리까지 의원석으로 만들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한 상당수 친박 의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 지도부가 국회에서 열리는 개헌 논의를 위한 비공개 의원총회에 앞서 개헌의 당위성과 당 화합을 강조한 것을 무색하게 만든 셈이죠.

안상수 대표는 "개헌 논의 자체가 대한민국의 갈등과 분열 요인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각 의원님들은 정파적 이익에 상관없이 개개인이 하나의 헌법기관으로 양심과 소신에 따라서 논의해야 되겠다"고 밝혔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와 김무성 원내대표가 8일 개헌논의를 위한 의원총회에 나란히 참석하고 있다. 출처 : 오마이뉴스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되다 보니 기자들은 회의장 바깥에서 의원들이 나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대변인을 통해 전해들어 보니 3시간 가까이 진행된 비공개 의총에서 발언에 나선 의원은 모두 25명. 하지만 이 중에 친박계 의원들은 없었습니다.

친이계 의원들만 발언에 나선 가운데 차명진, 김성태 두 의원만 개헌의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아 반대했고 나머지 의원들은 개헌 추진을 주장했죠.

김성태 의원은 "지금 전세난이다, 구제역이다, 또 비정규직 문제, 일자리 문제 민생 현장은 다급한 문제가 많은데 과연 이 개헌의 진성성과 타이밍이 맞는 이야기인가"라고 반문했고, 차명진 의원은 "이게 권력 구조에 관련된 문제니까, 대통령께서 직접 제안을 하시는 게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의총에 참석한 친박계 의원들은 의총장에서는 침묵했지만,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개헌 추진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냈습니다.

서병수 최고위원은 "왜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가 지금에 와서 하느냐, 이것이 야당이라든가 국민의 공감대를 얻지 못한 상황에서 실현 가능성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왜 이 시기에 하려고 하느냐,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고, 윤상현 의원은 "국민들은 개헌에 대해서 말하지도, 묻지도 않는다, 그래서 개헌부터 하자는 저의가 무엇인지 의심받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8일 한나라당 개헌 의총은 처음부터 비공개로 진행됐습니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개헌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여당이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는 개헌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생소하다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렇게 한나라당 개헌 의총 첫날은 막을 내렸습니다. 친이계 의원들이 입장을 밝힌 반면 친박계 의원들은 침묵했습니다. 친박계 의원들은 아예 개헌 논의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민심도 비슷합니다. 우리는 개헌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폭등한 돼지고기값, 배달마저 끊긴 우유, 대학가까지 번진 전세난 등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렇게 국민이 걱정하는 현안이 많은 상황에서 개헌을 논의하자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개헌의 필요성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촉박한 정치 일정을 놓고 볼 때 물리적으로 개헌이 이뤄지기는 힘듭니다. 개헌을 하려면 18대 국회 초에 여야가 머리를 맞대로 논의했어야죠. 그렇기 때문에 정략적인 의도로 개헌을 추진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겁니다.

8일 한나라당 개헌 의총 시작 전 잠시 눈을 감고 있는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

앞으로 이틀이나 개헌 의총이 이어질 예정이지만, 현장에서 느낀 분위기는 '더 이상 의총해서 뭐하냐'였습니다.

의총을 통해 개헌의 동력을 얻겠다던 이재오 특임장관 등 친이계의 전략이 개헌 논의 자체에 불참한 친박계의 반발에 부딪히면서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양을쫓는모험(박정호) 트위터 주소 -> http://twitter.com/jungho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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