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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검찰 태광그룹 비자금 수사가 아쉬운 이유

검찰의 태광그룹 비자금 수사가 약 4개월 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서울서부지검은 어제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을 1천400억 원대의 횡령, 배임을 저지른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이 회장의 어머니 이선애 태광산업 상무를 비롯한 오용일 태광그룹 부회장, 진헌진 티브로드 전 대표 등 6명을 동일한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검찰이 밝힌 이 회장 등이 태광의 회삿돈을 빼돌린 수법은 다양하더군요. 회계 부정 처리는 물론이고, 직원들의 피복비를 착복하고, 임금 허위지급, 제품까지 빼돌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횡령한 돈이 536억여 원.

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계열사가 보유하고 있던 골프연습장 등을 사주 측에 헐값으로 넘기게 했고, 이 회장의 소유인 건설업체에 무담보 대출 등을 지시했습니다. 그룹 측에 총 995억 원 정도에 손실을 떠넘긴 셈이었습니다.

대검찰청 홈페이지 캡쳐화면.



또한 검찰은 이 회장이 비자금 4천400억여 원을 차명계좌 7천여개와 임직원 명의 주식과 부동산 등으로 관리를 해왔다고 밝혔습니다. 이 비자금 중 1천920억 원 정도를 가족을 위해 썼다는군요.

검찰의 수사를 통해 태광그룹의 비리가 들어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회사의 돈을 마치 자신의 호주머니 돈으로 여기는 그룹 총수는 법의 처벌을 받는 게 당연합니다. 직원들을 팔아, 계열사를 팔아 총수 일가의 배를 불린 '회장님'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21세기 공정사회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전근대적인 기업이 남아 있어서는 안 되겠죠.

하지만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모아졌던 정관계 로비에 대해서는 밝혀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어제 이와 같은 지적에 대해 의혹이 제기됐던 방송통신위원회, 금융감독원, 국세청 등을 상대로 조사를 벌이면서 내부 제보자의 진술도 들었지만, 기소를 할 수 있는 물증은 찾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의 개인 집무실이 있는 서울 종로구 신문로 흥국생명 본사. 검찰은 지난 10월 16일 태광그룹에 대한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 이 회장의 집무실과 장충동 집을 압수수색을 벌였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정관계 로비 없이 태광이 급속한 케이블 사업 확장을 성공했을까'하는 의구심을 가져온 저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네요. 지난 10월 검찰은 태광그룹이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들에게 2장 이상의 법인카드를 건넸다는 정황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에둘러 확인해준 적도 있었죠. 또한 비자금이 정관계 인사들에게 건네졌다는 의혹도 꾸준히 제기됐었고요.

검찰은 단서가 없었다고 밝혔지만, 먼저 검찰이 수사 의지가 있었는지부터 묻고 싶습니다. 지난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에서 보여준 검찰의 소극적인 태도를 생각해볼 때 '정관계 인사가 연루된 로비 의혹을 그대로 덮고 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특히 이번 수사를 지휘해왔던 남기춘 서부지검장이 지난주 사의를 표명한 것이 의심스럽습니다. 수사결과를 빨리 내놓으라는 검찰 수뇌부의 지시나, 정관계로 불똥이 튈 것을 우려한 윗선의 지시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죠. 외부 압력에 의해 태광그룹 수사가 제 궤도로 오르지 못하고 부실 수사로 마무리됐다는 겁니다.

어쨌든 검찰이 정관계 로비 의혹을 규명하지 못하면서 태광그룹의 정관계 로비 의혹은 그냥 묻히게 됐고, 검찰에 대한 신뢰는 더 떨어지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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