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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안타까운 구제역 사태, 사과없는 정부 '남 탓'까지

어제 정부는 구제역 사태에 대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저는 대국민담화를 발표한다고 해서 정부가 그동안 지적됐던 초동 방역 실패에 대해 사과를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정부의 담화는 제 예상을 빗나갔습니다.

정부의 담화에 사과는 없었습니다. 대신 국민과 축산농가에 대한 '훈계'만 들렸습니다. 담화 대부분을 설 연휴를 맞아 국민들이 정부의 방역을 잘 따라달라는 요구와 해외 구제역 발생 농가 방문 자제 요청에 할애했습니다.

물론 아직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는 구제역을 극복하려면 전 국민의 협조가 필요하겠죠. 설 연휴를 맞아 민족 대이동이 시작되는 만큼 구제역 확산에 대한 위험이 큰 상황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정부의 대국민담화가 당부와 요구로만 채워진 것은 아쉽습니다.

26일 오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합동브리핑룸에서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과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장관 장관(구제역중앙사고수습본부장)이 설을 앞두고 구제역 방역 대책에 대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번 구제역 확산은 이미 밝혀진대로 정부의 초기 방역 작전의 실패에 큰 책임이 있습니다. 지난 11월 경북 안동에서 첫 구제역 의심 신고가 들어온지 며칠이 지나서야 출입 통제에 들어간 것은 너무 늦은 조치였습니다.

그 사이에 안동의 구제역 바이러스는 경기도를 거쳐 인천 강원도로 퍼져나갔죠. 구제역이 발생한지 60여 일만에 270만 마리가 넘는 가축이 매몰 처리됐고, 이에 들어간 비용, 보상비, 피해액 등은 2조를 넘어섰습니다. 또한 가족처럼 키우던 가축을 땅에 묻는 농민들은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최근에는 백신 부족으로 인한 농가들의 원성이 들리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렇게 유, 무형의 피해와 아픔을 불러온 구제역 사태에 대해 마땅히 사죄를 해야 합니다. 초기 방역 실패에 대해서, 백신 부족 사태 등에 대해서 국민들과 농민들에게 사과를 하는 것이 책임 있는 정부의 모습입니다.

17일 축산농가에서 구제역 백신접종이 진행되고 있다. 출처 : 함양군청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잘못에 대한 시인과 반성은 커녕 국민들과 농민들이 문제라는 듯이 훈계하고 있습니다.

여기다가 언론 보도를 보니 구제역중앙사고수습본부장을 맡고 있는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은 오늘 열린 고위당정회의에 참석해 '매뉴얼대로 대응을 했는데 매뉴얼에 문제가 있는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는군요. 황당했습니다. 매뉴얼대로 했다니...

구제역 매뉴얼의 주요 내용은 지난 김대중 정부 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정부는 파주에서 발생한 구제역을 22일 만에, 소·돼지 2천200여 마리를 살처분하는 피해만으로 막았죠. 구제역 신고가 들어온 직후 군까지 동원한 완벽한 초기 대응으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17일 축산농가에서 구제역 백신접종이 진행되고 있다. 출처 : 함양군청

지금 정부의 구제역 대응과는 하늘과 땅 차이죠. 2천 마리와 2백70만 마리. 정부의 실책이 분명함에도 전 정권이 만들어 놓은 매뉴얼 탓을 하는 것은 적반하장입니다. 만약 매뉴얼대로 했다면 이번 구제역 사태는 초기에 진압됐을 겁니다.

자신의 잘못은 보지 못하고 '남 탓'만 하는 정부의 모습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정부는 아직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심각성을 알았다면 허술한 대응도 없었겠죠.

사과부터 하십시오. 정부는 초기 대응과 방역 실패에 책임을 지고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합니다. 아울러 관련 관료들의 책임도 물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국민들과 농민들에게 협조를 구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양을쫓는모험(박정호) 트위터 주소 -> http://twitter.com/jungho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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