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사회 이야기

자동차보다 돼지고기? 결국 퍼주기로 끝난 한미FTA 재협상

우려가 현실이 됐습니다. 결국 한미FTA 재협상은 미국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한 '퍼주기'였습니다.

어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의 한미FTA 재협상에 대한 내외신 기자회견을 보면서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협상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김 본부장은 1시간에 걸쳐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그동안의 재협상 과정과 결과를 설명하면서 "상호주의에 입각해 이익의 균형을 확보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이익의 균형을 확보했다? 순간 귀를 의심했습니다. 양쪽의 손익이 비슷해야 쓸 수 있는 '균형'이라는 단어는 이번 한미FTA 재협상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김 본부장은 자동차 부분에서는 우리가 보했지만, 돼지고기 부문과 제약 부문에서 미국의 양보를 얻어냈다고 강조했습니다.

언뜻 보면 1개를 양보하고 2개를 양보했으니 균형을 이룬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터무니 없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5일 오전 외교부 브리핑실에서 열린 한미FTA 재협상 결과발표 기자회견 도중 기자의 질문이 잘 들리지 않는다며 손을 귀에 갖다대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번 재협상에 대해 미국 언론이 '오바마의 승리'라며 자축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미국이 얻은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우리 자동차의 대미 수출은 어려워졌고, 미국의 자동차는 더 쉽게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지난 2007년 본협정 때와 비교하면 크게 미국에 양보한 겁니다. 한미FTA 본협정에서 3000㏄ 미만 한국산 승용차는 FTA 발효 즉시 글고 3000㏄ 초과 승용차는 3년 이내에 2.5%의 관세를 없애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재협상을 통해 이 시한은 '발효 뒤 5년째'로 모두 연기됐죠. 그렇지만 미국차 관세는 한미FTA가 발효되자마자 현행 8%에서 4%로 낮아지고, 5년 뒤에는 관세 완전철폐가 됩니다. 더군다나 미국은 우리 자동차에 대한 긴급수입제한조치까지 도입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미국 자동차는 연간 판매량이 2만 5천대인 차량까지 미국 안전기준에 따라 판매할 수 있게 됐습니다. 본협정 때는 6천 5백대였습니다. 우리는 미국 자동차에 대한 환경 기준도 양보했습니다.

미국 자동차는 우리나라에서 자국의 기준에 따라 운행하게 되지만 우리나라의 자동차 수출은 미국으로부터 통제받을 수 있게 된 겁니다. 본협정에서보다 후퇴한 굴욕적인 협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돼지고기에서 이익을 챙겼다고요?  2007년 FTA 협정문에는 25%가 부과되는 미국산 냉동 돼지고기 관세율을 오는 2014년 1월1일까지 단계적으로 철폐하게 돼 있었죠. 김 본부장은 이번 협상을 통해 그 시한을 2016년으로 2년 늦췄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협정 발효 시점을 2011년으로 보면 오히려 유예기간이 오히려 줄어든 셈입니다.

제약 관련 조항에서도 이익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이 의약품의 허가와 특허 연계 조항은 국내 의약품값 상승을 부르는 독소조항이라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삭제가 필요한 조항이었죠. 이걸 발효 이후 3년 동안 유예하겠다고 합의했다고 합니다. 시간을 벌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 이 조항은 콜롬비아와 페루는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삭제한 조항입니다. 김 본부장은 삭제를 왜 하지 못했냐는 지적에 대해 "우리는 페루 등과 다른 선진화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는 아쉬운 부분입니다.

11월 11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한미FTA 밀실굴욕 재협상 규탄 및 비준반대 야5당 결의대회' 참가자들이 "정부가 진행중인 한미FTA 협상은 일방적인 양보로 이뤄지는 굴욕적인 퍼주기 협상"이라며 규탄구호를 외치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남소연

아무리 살펴봐도 이익의 균형은 어불성설입니다. 자동차 다 내주고 돼지고기를 얻은 게 균형일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쇠고기 문제에 대한 별도 협의가 있을 거라는 목소리가 외신 등을 통해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자동차 다 내주고 쇠고기 다 받고 돼지고기 얻는 협상이 될까봐 걱정됩니다.

'한 점도 고치지 않겠다'는 협정문을 미국에게 퍼주기 위해 수정하는 정부가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야5당은 당장 한미FTA  국회 비준 거부를 선언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김종훈 본부장은 어제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를 만나 '미국의 군사적 지원 때문에 불리합 협상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는 비판'에 대해 "협상을 잘못했다고 해서 물러나게 되면 해병대에 지원하려고 한다, 체력이 안 되면 가서 밥이라도 지을 생각"이라고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다 퍼주고 나서 '잘못되면 해병대 취사병으로 입대'하겠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잘못된 재협상이라고 평가하는 이번 협상은 다시 논의해야 합니다. '해병대' 운운하며 배짱 튕기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p.s 제 글이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 모양의 추천 버튼을 꾹 눌러주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