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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용산참사' 유죄판결 확정이 유감스러운 이유

어제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G20대응 민중행동이 주최한 집회를 취재하던 중에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거의 2년 전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망루에 올랐던 용산 철거민들의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는 뉴스였습니다.

대법원이 검찰로부터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일반건조물방화·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됐던 이충연 씨 등 9명에 대해 징역 4~5년을 선고했던 원심을 그대로 확정해 버렸습니다.

저는 용산참사가 일어난 당일 아침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불타버린 망루를 바라보며 또한 보상 문제가 합의된 당일에도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유족들도 만났고 그들의 울음소리도 들었습니다. 그 현장에 설 때마다 유족들을 만날 때마다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긴 세월동안 고통 받아온 유족들이 정부와 합의를 했기에 재판은 잘 풀릴 줄 았았는데... 제 바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습니다. 법원은 검찰의 기소 내용을 대부분 인정하며 철거민의 행동만 문제 삼았습니다. 대법원은 '피고인들과 농성인들이 던진 불붙은 화염병이 망루 3층 계단 부근에 떨어져 화재가 발생했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밝히면서 '경찰특공대의 진압작전을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볼 수 없다고 한 원심 판단 역시 적법하다'고 판시했습니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재개발지역에서 농성중인 철거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특공대가 크레인에 매달린 컨테이너 박스를 타고 고공진압 작전을 벌이는 가운데 옥상에 설치된 농성 가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시커먼 연기와 불길이 치솟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권우성

유감입니다. 철거민들이 망루에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무시된 채, 참사를 불러온 경찰의 무리한 진압작전에는 면죄부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법을 공부하지 않은 저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습니다. 행위를 일어나게 만든 상황을 반영하지 않은 판결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철거민들이 망루에 올라가는 것이 좋아서 올라간 게 아닙니다. 수천 만원의 권리금을 주고 들어간 가게가 헐린다고 하자 죽기 살기로 망루에 선 겁니다. 아무도 그들의 사연을 들어주지 않아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거리로 쫓겨나가게 된 상황에서 생존권을 요구하기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런데 철거 관게사들은 이 주장을 묵살해 버렸고, 경찰은 무리한 진압 작전을 했습니다. 배수의 진을 친 철거민들을 급하게 몰아친 결과 참사가 발생한 겁니다. 무리한 진압, 이게 참사의 원인을 제공한 셈이죠.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 옥상에 설치된 철거민 농성용 가건물을 경찰이 강제진압에 나서면서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을 포함해 6명이 사망한 가운데 2009년 1월 20일 저녁 참사 현장에서 열린 용산 철거민 참사를 추모 촛불문화제에서 시민들이 분향소에 헌화를 하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재판 과정에서는 검찰이 비협조적이었습니다. 검찰은 1심이 진행될 당시 경찰 지휘관들의 혼선과 무리한 진압을 인정하는 수사 기록을 공개하지 않아 불신을 자초했습니다. 항소심 때까지 검찰은 모든 수사기록 공개를 거부한 채 재판부 기피신청을 했습니다.

물론 대법원이 어제 판결문에서 '다만 경찰의 직무집행에서 시기 등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고 밝혔지만, 저는 이 판결이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용산참사를 불러온 원인에 대해서 '아쉽다'고 그칠 것이 아니라 그 원인부터 판단했어야 했습니다.

대법원으로부터 면죄부를 받은 공권력이 또 얼마나 무리한 수사와 진압작전을 펼칠지 벌써 우려됩니다. 전국 곳곳에 철거민들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인데 국가 권력은 어떻게 또 이들을 폭압적으로 끌어내릴까요. KEC 노조지부장 분신도 경찰의 무리한 진압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최근 국가인권위의 기능 마비로 가뜩이나 인권 침해 감시가 허술해진 상황에서 부당한 상황에 내몰린 사회적 약자들이 어디서 생존권 보장을 호소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올 겨울은 유난히 더 추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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