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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요새' 코엑스 앞 1인 시위, 경찰의 이중잣대

어제 낮 직접 돌아본 G20 정상외의가 열렸던 서울 삼성동 코엑스는 G20 정상들의 요새였습니다. 정말 '물샐 틈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습니다.

코엑스 정문과 후문에는 경찰 특공대의 특수 장갑차가 배치됐고, 경찰 헬기는 수시로 코엑스 상공을 돌았습니다. 또한 중화기로 무장한 경찰 특공대가 2인 1조로 코엑스 주변을 순찰했고, 경찰견은 회의장으로 차량이 진입할 때마다 폭탄물을 탐색했습니다. 출입구마다 검색대가 설치돼 출입증이 없는 일반인들과 차량의 출입이 통제됐습니다.

경찰은 갑호 비상령을 발동하고 전국에서 동원된 경찰 5만여 명을 코엑스 주변과 삼성역, 선릉역 등에 배치했고, 코엑스 바로 옆에는 2m 높이의 전통 담장형 펜스를 세웠습니다. 또한 경찰은 봉은사로와 아셈로 등 코엑스 둘레에 높이 2m, 길이 1.9km의 녹색 펜스까지 세워 코엑스를 철옹성으로 만들었습니다. 봉은사로와 아셈로의 차량 통제도 밤 10시까지 이어지고 영동대로와 테헤란로는 도로 절반만 차량이 다닐 수 있었습니다.

또한 유동인구가 많은 코엑스 지하상가 등에는 밤 10시까지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 없었고, 지하철과 17개 노선 버스도 오늘 하루 코엑스와 연결되는 삼성역과 코엑스 주변 정류장에 서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코엑스 지하상가는 문을 닫았고, 코엑스 주변 일부 상점도 하루 휴업에 들어갔습니다.

G20 정상회의가 열린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G20 정상회의 행사장인 코엑스 주변에 테러나 시위단체의 진입을 막기 위해 방호벽이 설치되어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경찰의 통제로 행사장 주변은 비교적 조용했지만, 일부 시민들이 "왜 못 가게 하냐"고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신분증도 있는데도 평소 다니던 길을 못 다니게 하는 것은 너무 과잉 통제라는 거죠.

특히 코엑스 옆 봉은사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면서 일부 신도들과 시민들이 불만을 터트렸습니다.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려는 시민들이나 봉은사 안 '아름다운 가게'를 이용하려는 시민들은 봉은사 안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사전에 발급받은 신도증이 없거나 봉은사 신도가 아닌 사람들은 출입을 경찰이 막았기 때문입니다.

12일 낮 코엑스 주변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경찰 특공대.


봉은사에서 기도를 마치고 나오던 박모씨는 "경찰들이 너무 와 통제를 해서 불편하다"면서 "수능을 앞두고 신도들이 와서 기도해야 하는데 그분들이 기도를 통해서 모든 일을 성취해야 하는데 어제부터 경찰들이 많이 와 있어서 속상하다"고 털어놨습니다.

또한 그저께 코엑스 앞에서 30대 여성이 정부를 비판하며 분신을 시도하다 경찰에 연행된 가운데 오늘도 코엑스 부근에서는 1인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어제 오전 장애인 소녀 성폭행범 처벌을 촉구하는 젊은 여성의 시위에 이어 오후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반값 등록금 공약 이행을 요구하는 대학생의 1인 시위가 있었지만, 여성은 경찰에 의해 쫓겨났고 대학생은 곧바로 경찰에 연행됐습니다.

G20 정상회의가 열린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G20 정상회의 행사장인 코엑스 출입구 앞에서 한 여성이 'G20 정상회의'를 반대하며, 시너를 몸에 뿌린 뒤 분신을 시도하다가 경찰들에게 연행되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하지만, 그저깨에 이어 어제 오전에도 세 시간 동안 한반도 평화를 호소하는 1인 시위를 벌인 한국계 미국인 청소년 환경운동가 조너선 리는 경찰로부터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았습니다. 1인 시위를 막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에 경찰은 시위 내용과 상황에 따라 대응이 다르다는 말만 할 뿐 정확한 기준이나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1인 시위가 벌어진 코엑스 건너편에서 만난 경찰 관계자들은 '정확한 기준이 있냐'는 질문에 "내용 때문에 그런데..."라며 말 끝을 흐렸습니다. 

"아무래도 경호와 관련되니까... 어떤 내용이냐에 따라서 사람들이 몰리고 이목을 끌어들이는 경우가 있고, 그냥 '아, 그렇구나' 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있어요."
 
조현오 경찰청장은 어젯밤 경찰청 홈페이지에 "각종 시민단체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이 있음에도 국가적 대사의 성공을 위해 집회, 시위를 최대한 자제해줬다"면서 "과거 G20과는 달리 과격 폭력시위가 사라져 국제사회에 성숙한 집회, 시위 문화를 과시하는 소중한 기회가 됐다"는 감사의 글을 올렸지만, 정작 회의장 주변 1인 시위는 기준 조차 애매했습니다.

12일 오전 G20 정상회의가 열린 코엑스 건너편에서 1인 시위를 펼친 미국인 조너선 리는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만약 미국인 조너선 리가 호소했던 한반도 평화를 한국 대학생이 그대로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도 피켓을 펼치자 마자 경찰에 연행됐을 겁니다.  

정부는 G20 정상회의를 통해 국격 상승과 선진화를 이룰 수 있다며 대대적인 홍보를 했지만, 일방적인 국민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1인 시위에 이중잣대를 적용하는 등 후진적인 모습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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