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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여제자 '감칠맛' 발언 박범훈 전 총장이 청와대 수석이라니

지난 23일 박범훈 전 중앙대 총장이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 임명됐습니다.

박범훈 내정자는 직급에 구애받지 않고 교육, 문화 분야에서 성심껏 업무를 보좌하겠다며 수락 의사를 밝혔다고 합니다. 이 대통령은 전직 총장의 경륜을 고려해 가급적 장관급 예우를 할 것을 지시했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또한 다음달 출범하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초대 위원장에 전 교육과학시술부장관 김도연씨를 내정했죠.

야권에서는 이와 같은 인사에 대해 "또 이명박 대통령 선거 캠프 인사"라고 비판했습니다. 캠프 사람만 쓰는 '보은 인사'라는 지적입니다.

저도 이번 인사를 보면서 '보은 인사'라는 지적에 대체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심각하게 느껴지는 것이 박 전 총장의 청와대 입성입니다. 박 전 총장은 총장 재임시절이던 불과 2년 전 여성 비하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고 학생들에게 공개 사과 e메일까지 보냈었습니다. 이런 인사가 중용된다는 것은 대통령이 주장하고 있는  '공정 사회'와 맞지 않습니다.

저는 당시 박 총장이 문제 발언을 할 때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2009년 2월 23일 국회에서는 이명박 정부 출범 1주년 기념 강연회가 열렸습니다. '희망의 정치'를 펼쳐나가기 위해 한나라당 당내 모임에서 준비한 것이었죠. 김형오 국회의장을 비롯해 박희태 태표 등 의원 수십 명과 당원 3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흡사 결의대회, 단합대회처럼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습니다.

큰 박수를 받으며 무대 위에 올라온 사람은 박범훈 중앙대 총장. 박 총장은 지난해 대선 이명박 캠프의 문화예술정책위원장과 대통령 취임준비위원장을 연이어 맡았습니다.. 하지만 교수의 지나친 정치 참여라는 '폴리페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죠.

이명박 대통령 취임준비위원장을 맡았던 박범훈 중앙대 총장이 2009년 2월 23일 이명박 정부 출범 1주년 기념 초청 강연회에서 '풍류를 알면 정치를 잘한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남소연

박 총장은 '풍류를 알면 정치를 잘할 수 있다'는 주제로 음악에 담겨있는 정치 철학을 풀어냈습니다. 즉, 음정과 박자, 화음과 장단을 잘 지켜야 하듯이 정치인도 법과 질서 그리고 화합을 이룩해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박 총장의 강연은 좋은 음악소리처럼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강연 도중 박 총장이 야당 대표 비난과 여성 비하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냈기 때문입니다.

박 총장은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를 조폭에 비유하며 "정치인 자격이 없다"고 맹비난했습니다.

"TV보니까 수염 안 깎으신 어느 의원님이 책상위에 신발 신고 올라가서 깡충깡충 뛰면서 막 난리쳤잖아요. 조폭 같은 행위를 하는 분들이 TV에 비치면 저같이 예술하는 사람은 가슴이 쓰려요. 어떻게 저럴 수 있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치하시는 분들이 어떻게 저렇게 박자, 음정을 모르나. 박자, 음정이 아니라 음악이라는 형식 자체를 아주 까부수는 겁니다."

박 총장은 "불협화음은 화음을 위해서 존재한다"면서 "국회에서는 아무리 기다려 봐도 화음은 들을 수가 없고 상대방을 비방하고 헐뜯는 불협화음만 들어야 하니 국민들이 실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국회에서 여야가 다투고... 그런데 뛰고 신발신고 올라가는 건 안 된다. 창피한 것이다. 이런 다툼은 화음을 만들어내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박 총장은 이 불협화음 부분을 설명하면서 여성의 외모를 소재로 삼았습니다.

"미스코리아 이런 이쁜 아가씨들만 다 나와서 고르잖아요. 진선미 요새 그게 없어졌는지 모르겠는데 참 그거 심사하기 어려습니다. 그런데 심사하기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럴듯한 사람 하나 세워놓고 옆에 못난이 갖다놓으면 금방 이쁘게 보여."

저는 공개적인 강연회에서 여성의 외모를 비교하는 박 총장의 발언에 놀랐습니다. 여성 참석자들이 남성보다 많은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습니다.

박 총장은 이명박 대통령을 소리꾼, 한나라당을 고수, 이 대통령이 잘 하기 위해서는 고수의 추임새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강연 막바지에 제자들을 불러 직접 판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1주년을 앞두고 한나라당 최병국 박순자 심재철 안상수 의원이 2009년 2월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명박 대통령 취임준비위원장을 맡았던 박범훈 중앙대 총장의 초청 강연을 들으며 웃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남소연

박 총장은 마이크 앞에 선 여성 제자를 향해 "토종"이라고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렇게 생긴 토종이 애기 잘낳고 살림 잘하는 스타일이죠. 이제 음식도 바뀌고 해서 요즘엔 키가 큰데 이쪽이 토종이고, 우리 때와 음식이 달라 길쭉해지고 했는데 사실 (조그만 게) 감칠맛이 있습니다. 이렇게 조그만데 매력이 있고, 시간상 제가 자세하게 여러 가지 내용을 설명 못 드리겠는데..."

여성 제자를 "토종"이니 "감칠맛이 있다"고 설명한 박 총장이 시간상 자세하게 설명하지 못한 건 무엇일까요?

박 총장은 "이왕 무대 올라온 우리(한나라당)는 죽어라 추임새 해줘야 한다"면서 노래 부르는 사람(이명박 대통령)은 더 잘 불러서 모든 국민이 일어나서 박수치면서 폭탄성 추임새가 터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

강연을 끝까지 듣고 있던 의원들은 단상에서 내려오는 박 총장과 악수하고 기념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했지만, 이명박 정부 취임 1주년 기념 강연회는 야당 대표 비난과 여성 비하 발언으로 얼룩져버렸습니다.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들어보시니 어떠신가요? 불과 2년 전 일이라는 게 놀랍지 않으신가요? 대학 총장이 저란 말을 했다는 게 믿겨지지 않죠? 저는 박 전 총장의 청와대 입성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2년 남은 이명박 정권에 부담만 될 겁니다. 청와대는 이번 인사에 대해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양을쫓는모험(박정호) 트위터 주소 -> http://twitter.com/jungho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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