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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민간인 사찰' 각하라니, 인권 포기한 인권위

국가인권위원회가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를 조사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인권위는 어제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피해자 김종익 씨측이 낸 인권침해 진정사건에 대해 각하했습니다. 이 사건이 접수된지 6개월 만입니다.

어제 회의에 참석한 8명의 위원 가운데 김영혜 상임위원 등 5명은 지난 7월 진정서가 접수된 됐는데 사건 발생 이후 1년이 지났고 헌법재판소에 관련 사건이 계류돼 있다는 이유를 들어 조사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현병철 위원장은 의견을 밝히지 않았지만, 격론 끝에 다수결에 따라 결국 민간인 사찰 문제를 조사하지 않기로 한 겁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인권위가 인권 침해가 분명한 사안을 인권위법을 이유로 조사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입니다. 설령 사건 발생 시점이 1년 전이라고 해도 인권 침해가 분명한 사안에 대해서는 인권위가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특히 인권운동가들에 따르면 인권위법 32조 1항 4호 '사건이 발생한 지 1년 이상 지나 진정서를 낸 경우'라는 조항은 인권위법상 '사건이 발생한 지 1년 이상 지난 사건'이라는 조항은 인권위가 최대한 빨리 이 침해에 대해 구제를 해서 더 이상의 인권침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조항입니다. 이렇게 인권침해 사안을 각하하라고 만든 조항이 아닙니다.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 지난 2009년 11월 13일 오전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남소연

또한 민간인 사찰 문제는 청와대 윗선 개입 문제 등이 밝혀지는 등 아직까지 진행형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피해자가 나올지 알 수 없습니다. 김종익 씨 이외에도 수십명, 아니 수백명, 수천명의 피해자가 밝혀질 수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시간이 지났다고 각하할 것인지 인권위에 되묻고 싶습니다.

그동안 인권위의 행태를 보면 인권위가 진정성이 의심됩니다. 정권에 불리한 조사를 최대한 질질 끌다가 조사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밖에 보이 않습니다.

실제로 현병철 위원장의 취임 이후 인권위가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미네르바 사건이나 PD수첩 사건, 양천경찰서 사건 등 인권위가 앞장서서 다루었어야 할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침묵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현 위원장은 지난 10월 상임위 결의를 받지 않고도 위원장이 단독으로 전원위원회에 상정을 할 수 있게 하는 운영규칙 개정안을 상정해 위원장 마음대로 인권위를 이끌어 가겠다는 선언까지 했죠. 이에 반발해 유남영, 문경란 두 상임위원과 비상임위원들이 사퇴하기도 했습니다.

11월 4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 촉구 시민인권단체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이 인권위 7층 인권상담센터를 점거한 채 현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인권위의 이번 각하는 이해할 수 없는 결정입니다. 민간인 불법 사찰에 짓밟힌 국민의 인권을 포기해버린 겁니다. 이런 결정을 내리고도 인권위가 국민의 인권 보호를 위해 존재하는 국가기관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인권위가 인권을 위해 존재한다면 민간인 사찰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피해자 김종익 씨는 자신의 인격과 삶이 파괴당했다며 아직까지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안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인권 침해가 명백한 민간인 사찰 문제를 외면한 인권위가 앞으로 어떤 인권 침해 사안을 논의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인권위가 인권을 포기한다면 국민은 인권위를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권위는 제발 권력의 눈치가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를 듣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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