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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고흥길 사퇴'로 뒷수습? 국민 우롱하는 꼬리자르기

고흥길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당직을 전격 사퇴했습니다.

고 의장은 어제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문화체육관광부의 템플스테이 예산 등 꼭 반영해야 할 예산들이 빠진 건 이유 불문하고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땅히 가책을 받을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사퇴의 변을 밝혔습니다.

고 의장은 왜 사퇴를 했을까. 한나라당이 성난 불교계를 달래기 위해서 고 의장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서민 복지 예산 삭감 등에 분노하고 있는 민심 수습도 필요하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겠죠.

고 의장도 "안상수 대표와 김무성 원내대표 그리고 원희룡 사무총장과 만나 제가 사퇴를 통해 책임지는 걸로 예산 파동을 일단락 짓자고 제안했고 동의를 받았다"고 어제 기자회견에서 설명했습니다.

고흥길 한나라당 정책의장(자료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하지만 한나라당의 생각대로 고 의장의 사퇴로 '예산안 날치기'가 수습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입니다.

첫째, 먼저 사과하십시오. 의회를 무력화시킨 예산안 강행처리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고 의장은 "다른 항목에 대해서는 일부 빠진 예산이 있기는 하지만 전부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사업이다, 경우에 따라서 예비비나 부담금을 늘려서 할 수 있는 사안들이기 때문에 문제가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고 의장은 안상수 대표가 불교계에 약속한 예산과 양육수당 확충의 불발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일 뿐 날치기에 대한 사과를 한 게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한 셈입니다. 또한 영유아 필수예방접종비와 결식아동 지원 예산 삭감을 한나라당이 대수롭지 않게 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습니다.

'난투극 국회', 정말 부끄럽습니다. 한나라당은 국민들의 정치 혐오증을 불러 일으킨 행동에 대해 대국민 사과도 해야 합니다.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의화 국회부의장이 2011년 예산안을 강행처리를 시도하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 이은재, 손숙미 의원이 의장석을 점거하고 있는 최영희 민주당 의원을 끌어내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둘째, 사람이 틀렸습니다. 정작 책임지고 사퇴할 사람은 따로 있죠.

'예산안 강행처리'라는 만행을 기획, 제작하고 주연한 주인공들이 책임을 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고 의장이 사퇴한 것은 주인공 대신 조연이 모든 걸 뒤집어 쓴 꼴입니다.

예산안을 졸속 심사한 이주영 예결특위 위원장과 숫자만 믿고 밀어부친 안상수 대표와 김무성 원내대표, 중재를 포기한 박희태 국회의장, 의사봉을 두드른 정의회 국회부의장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고 의장이 사퇴로 뒷수습을 바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생각입니다. 

셋째, 사퇴보다 철회를 해야 합니다. 고 의장의 사퇴가 아니라 예산안 처리 철회가 필요합니다.

지금도 내년도 예산안에서 삭감된 각종 서민 복지 예산 항목이 나오고 있습니다. 영유아 필수예방접종비 예산 등과 더불어 대학생들의 등록금 및 장학금 관련 예산도 많이 줄었네요. 지난해 3천억 원 규모였던 취업 후 상환제 이자대납 예산이 1천117억원이라고 합니다.

한국장학재단 출연금 1천300억 원은 사라졌고,군 복무 중 취업 후 상환제 이자 면제를 받는 방안은 무산됐습니다. 대졸 미취업자 학자금 이자 지원 사업도 중단됐다고 합니다. 반값 등록금 공약은 어디로 갔는지 한나라당에 묻고 싶습니다.

'형님 예산', '실세 예산', '여사님 예산' 등이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지만, 고 의장은 어제 '형님 예산'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보이더군요. "의원들이 지역구 예산을 챙기는 게 관례"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4대강 사업' 예산 포함,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 등의 내용이 담긴 새해 예산안을 한나라당이 물리력을 동원해 강행처리한 가운데,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일주문에 '민족문화 보호정책 외면하고 종교편향 자행하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에 대해 조계사 출입을 거부합니다'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렇게 헛점 투성이, 반서민적인 예산안을 강행처리 해놓고 고 의장의 사퇴로 뒷수습하겠다고요? 어림도 없습니다. 9조 원이 넘는 4대강 사업 예산도 문제지만, 그걸 떼어 놓고 보더라고 해도 해도 너무 했습니다. 나라 살림을 꼼꼼히 따져보지도 않고 날림으로 무리하게 통과시키는 건 야당과 국민을 무시한 행동입니다.

한나라당은 국민 우롱하는 꼬리자르기는 그만 두십시오. 앞에서 짚어 봤듯이 고 의장의 사퇴로 해결되는 것은 없습니다. 국민들의 정치 혐오증이나 예산안에 대한 분노나 복지 예산 삭감에 느껴지는 허탈감 중 그 어느 하나도 바꿀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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