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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물난리 시민들은 눈물, 서울시는 '행복한 한가위'

이번에도 '인재'였습니다.

집중 호우에 수도권은 마비됐습니다. 재난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던 서울시와 경기도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지하철이 멈췄고, 도로가 침수됐으며 추석을 앞둔 가정집과 가게들이 물에 잠겼습니다.

트윗에는 실시간으로 다급한 목소리가 올라왔습니다.

'광화문이 잠겼습니다' '을지로입구역 입구가 물바다여요' '신월동 침수됐습니다' '하수도에서 역류가 일어났어요' '지하철이 안 다녀요' '교보문고에 물이 새고 있습니다' '한남고가 침수로 통행금지입니다' '상암, 연희 지하차도 통제여요' '강남역에도 물이 차 올랐어요'

배수시설 설치나 하수도 정비를 게을리한 수도권에 사는 주민들은 그렇게 물난리를 겪어야 했습니다. 디자인 서울이라는 구호가 너무나 얄밉게 느껴지는 하루였습니다. 속은 썪었는데 겉만 화려하게 꾸민 꼴이었으니까요.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 연휴 첫날인 21일 오후 서울·경기 지역에 시간당 최대 100mm의 폭우가 쏟아진 가운데,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 앞 도로에 물이 불어나 차량이 물에 잠겨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난리가 나는 동안에 서울시를 비롯한 자치단체는 거의 대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휴일을 맞아 많은 공무원들이 고향으로 향했다고는 하지만, 재난 관리 매뉴얼도 있을 것이고 긴급 복구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대응이 늦었습니다.

어제 오후 4시 30분이 넘어서야 서울시는 '3단계 비상대책 근무령'을 발령했습니다. 오세훈 시장은 오후 5시께 남산 서울시 재난관리본부에 나가 피해상황 보고를 받고 복구를 지시했다고 합니다.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 연휴 첫날인 21일 오후 서울·경기 지역에 시간당 최대 100mm의 폭우가 쏟아진 가운데,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 앞 한 지하식당에 물이 들어차자 직원들이 배수펌프를 이용해 고인 물을 빼내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4시 30분이라고요?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옵니다. 그 당시에는 여기 저기서 이미 침수가 일어나고 광화문을 비롯한 홍대, 명동, 강남 등 서울 곳곳이 물바다가 된 다음이었습니다. 집중호우가 내리는 동안 손을 놓고 있다가 뒤늦게 사태 수습에 나선 겁니다. 그동안 디자인 서울을 외치며 전시행정에 힘써온 서울시가 정작 재해에는 신경쓰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 몇 시간 전부터 트위터에는 수많은 재해 관련 트윗이 홍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걸 외면한 건지 아니면 못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제서야 서울시가 대응에 나섰다는 것은 너무 늦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서울시민들이 어떻게 서울시의 행정을 믿고 따르겠습니까.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 연휴 첫날인 21일 오후 서울·경기 지역에 시간당 최대 100mm의 폭우가 쏟아진 가운데, 종로구 청계천 산책로가 물에 잠겨 시민들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방금 혹시 새로운 재난 소식이나 대응 방안이 나왔을까 해서 서울시 홈페이지에 들어가봤습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없더군요. 메인 화면에 떠 있는 것은 추석 인사였습니다.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풍성하고 행복한 한가위 되시길 바랍니다.'

그 아래 나와 있는 '안전행동요령'에도 물난리에 대한 항목은 없었습니다. 비상대책 근무령이 발령된 게 맞나요? 침수로 재산, 인명 피해를 입은 시민들이 많을 텐데 이에 대한 언급은 한 줄도 없었습니다.

'하이 서울뉴스' 홈페이지에서도 물난리에 대한 뉴스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서울시 블로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울시 홈페이지(http://www.seoul.go.kr/main/index.html) 캡쳐화면.


불과 몇 시간 집중호우에 시민들이 수해를 입게 만든 서울시가 고작 한다는 얘기가 '행복한 한가위 되시길 바랍니다'라니... 연휴 동안 비가 또 오면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서울시에 바랍니다. 수해 대비 요령을 비롯해 늑장 대응에 대해 사과하십시오. 또한 피해를 입은 시민들을 위한 대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를 밝히기를 바랍니다. 어제 물난리를 겪은 서울시민들은 아직 '행복한 한가위'를 보낼 여력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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