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사회 이야기

'살아있는 권력' 봐준 검찰, '깃털'만 뽑았다

'혹시나'했는데 '역시나'였습니다. 검찰이 민간인 불법사찰의 '몸통'을 끝내 밝혀내지 못하고 수사를 종결했습니다. 수사 66일 만입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오정돈 부장검사)은 그저께 진경락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 진경락씨와 기획총괄과 직원 장모씨를 각각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기소, 같은 혐의로 불구속기소했습니다. 또한 검찰은 공직윤리지원관실 점검1팀에서 일한 권모씨를 공용서류은닉 혐의로 불구속기소했습니다.

이로써 검찰은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을 비롯한 총 7명을 기소하는 것으로 수사를 종결했습니다. 하지만, 관심을 모았던 윗선 수사는 별 소득이 없었습니다. 누가, 왜 지시했는지, 누가 사찰 대상이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온 국민을 분노하게 했던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는 '깃털' 몇개 뽑는 걸로 끝나버렸습니다.

이번 검찰 수사를 보면서 또 한번 실망했습니다. '죽은 권력'은 열심히 수사하지만 '살아있는 권력'에는 한없이 약한 검찰의 속성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치고 돌아가는 검찰.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일찌감치 이인규 전 지원관 등의 불법사찰 혐의를 밝혀내고 이 전 지원관 등을 구속하면서 수사가 활기를 띄었지만, 본격적인 몸통 수사에 들어가면서 검찰의 칼 끝은 무뎌졌습니다.공직윤리지원관실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파손 되는 등 증거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설명만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애초에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 의지가 보이지 않았죠. 윗선 수사에 열쇠가 될 수 있는 자료 확보부터 실패했으니까요. 기소된 진 씨와 장 씨가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시점인 7월 5일부터 자료 파기에 나섰지만, 검찰의 압수수색은 7월 9일에야 이루어졌습니다.

수사 의뢰를 받자마자 자료 확보에 나섰다면 모든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을 텐데 늑장 수사로 기회를 날려버렸습니다. 검찰은 자료 파기를 지시한 배후도 못 밝혀냈습니다.

이렇게 확보된 자료가 없다보니 검찰은 이인규 전 지원관 등이 거짓을 얘기하는지 진실을 얘기하는지 가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통화기록 조회 등을 통해 관련자를 찾아내는 등 더 적극적인 수사를 했어야 했지만, 그런 정황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있는 창성동 정부종합청사 별관의 모습.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특히 검찰은 윗선 보고 라인을 밝힐 수 있는 고리까지 외면했습니다. 업무관련성도 없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워크숍에 참석했던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을 소환했지만, 면죄부만 주고 말았습니다.

야당이 주장했던 이른바 '영포라인'의 실세에는 접근도 못한 검찰 수사가 됐습니다. 검찰이 의지만 있었다면 이영호 전 비서관 뿐만 아니라 '윗선'과 '비선 보고' 의심이 있는 인사도 수사 대상에 올려놨어야 했습니다.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권력'도 철저하게 수사해야 했지만, 이번에도 국민을 실망시켰습니다. 민간인을 불법적으로 사찰한 엄청난 사건을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끝낸 검찰은 비판 받아 마땅합니다. 아울러 상설 특검 등 검찰 수사를 대신할 제도 마련도 시급해 보입니다.

이제 국민은 이인규 전 지원관이 알아서 민간인 불법사찰을 했다고 믿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과잉 충성심 때문에, 공명심 때문에 불법사찰을 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국민들을 바보로 만드는 일입니다.

공은 정치권으로 넘어갔습니다. 정치권이 결단이 필요합니다.특검을 통해 민간인 불법사찰의 '몸통'을 밝혀내야 합니다. 검찰의 면죄부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대한민국을 다시'사찰 공화국'으로 만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p.s 제 글이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 모양의 추천 버튼을 꾹 눌러주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