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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씁쓸한 '죄송 청문회', 죄송하면 그만두자

어제 김태호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지켜봤습니다. 40대 젊은 총리후보로 스포트 라이트를 받아온 김 후보자는 모두 발언을 통해 소통과 통합을 강조하며 김 후보자는 나라의 선진화를 이루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하지만 청문회를 지켜본 결과 김 후보자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김 후보자는 자신의 부인이 관용차를 사적으로 이용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의혹을 인정하고 유류비를 환급하겠다고 수습했고, 경남도지사 당시 도청 직원에게 집안일을 시켰다는 것에 대해서도 사과했습니다.

또한 '스폰서 의혹'을 불러온 재산 문제와 채무관계 누락과 관련해서도 '재산등록에서 누락돼 그대로 흘러오면서 문제가 됐다'며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것은 저의 불찰”이라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특히 김 후보는 청문회 도중 이용섭 민주당 의원에게 사과를 요구해 야당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습니다. 김 후보는 자신의 부인과 관련한 금품수수 의혹에 대해 황당한 얘기라고 부인한 뒤, 의혹을 제기한 이용섭 의원을 향해 '부인에게 사과의 표현을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밤새도록 집사람이 울었습니다. 눈이 퉁퉁 부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저희 집사람에게 사과의 표현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가 2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모두발언을 마친 뒤 몸을 숙여 인사하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남소연


김 후보가 집사람이 펑펑 울었다며 갑작스럽게 사과를 요구하자 야당 의원들은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의원들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사과해야 할 후보자가 거꾸로 야당 의원에게 사과를 요구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겁니다.

박병석 민주당 의원은 "애초부터 총리께서 겸손하지 못하다"라고, 당사자인 이용섭 민주당 의원은 "후보자처럼 청문위원한테 '우리 와이프한테 사과하라' 그런 건방진 얘기 한번도 해본 적 없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조순형 자유선진당 의원조차 "의혹에 대해 해명하시다가 배우자에게 사과를 요구한 것을 듣고 큰 충격을 느꼈다, 청문회 몇 번 해봤지만 특위 위원에게 후보자가 그런 발언을 하는 것도 처음이고, 국무총리로서 갖춰야 할 품성에서 큰 문제가 있다"라며 "4800만 국민을 상대해야 하는 총리는 어떠한 비판과 비난도 아량으로 수용하고 해야 한다, 조금 그렇다고 해서 발끈해가지고 그런 것 안된다"라고 질타했습니다.

결국 김 후보자는 "그렇게 겸손의 문제로 비춰졌다면 이 자리에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고 사과했습니다.

부적절한 처신과 적반하장식 언행이 드러날 때마다 '사과한다'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는 김 총리 후보를 지켜보는 마음은 너무나 착잡했습니다.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24일 오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권우성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내정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신 내정자는 어제 인사청문회에 나와 논란이 됐던 위장전입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 '국민과 청문위원들에게 사과한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부인의 위장전입 문제와 관련해서는 '작은 욕심을 부린 것 아니냐는 점에서 반성하고 있다'고 사과했습니다. 또한 건설업체 차량스폰서 의혹에 대해서도 '몇달 동안 지원받은 것은 인정한다'고 했습니다.

어제도 그야말로 모든 의혹이 사실이 되고 그 사실에 대해 사과를 하는 '죄송 청문회'였습니다. 이재훈 지식경제부 내정자와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 등 다른 내정자들의 각종 위법행위와 막말에 상처 입은 국민들은 다시 한번 가슴을 쳤을 겁니다.

인사청문회는 후보와 내정자들의 도덕성과 자질을 검증하는 자리입니다. 청문회 결과 도덕성과 자질에 문제가 있다면 깨끗하게 사퇴하면 될 일입니다. 아무리 '죄송하다'고 해도 이미 저질러진 각종 위법행위와 절절하지 않은 언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과를 받고 면죄부를 줄 수는 없습니다.

나라를 위해서입니다. 대통령이 주장한 '공정  사회'를 위해서입니다. 이런 인사들이 총리와 장관이 되면 나라가 선진화되고 사회가 공정해질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선진화와 '공정 사회'를 위해 더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어야 합니다. 말로만 '죄송하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죄송하면 그만두면 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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