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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방범용 CCTV가 겨우 41만 화소라니

기억하시나요? 4년 전 서울에서는 방범용 CCTV 설치 열풍이 불었습니다. 붙잡힌 범인들이 CCTV가 없는 곳을 범행장소로 노렸다고 밝힌 다음이었죠. 사실 당시 재정상태가 좋은 강남권을 제외한 비강남권 지자체들은 부족한 제원을 이유로 CCTV 설치에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범죄예방과 범인검거를 위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CCTV 설치에 나섰습니다.

당시 보도를 보니 CCTV 한 대 설치 가격이 1500만원 정도였고 연간 유지비도 350만원 정도가 든다고 했더군요.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에 고가의 CCTV 설치를 늘리겠다는 결정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인권침해 논란도 있었지만, 범죄예방이 먼저라는 여론이 더 컸습니다. CCTV로 범인을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또 범죄를 저지르고 달아나는 범인의 인상착의 파악도 쉬울 거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은 거죠. 따라서 각 지자체의 CCTV 설치는 순조롭게 진행됐었습니다.

경찰이 공개했던 CCTV에 찍힌 용의자의 모습. 출처 : 동대문경찰서


그런데 이번에 서울 동대문구에서 벌어진 초등생 성폭행 사건을 보니 각 지자체에 설치된 방범용 CCTV를 정밀 점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이 사건이 보도됐을 때 용의자가 금방 잡힐 줄 생각했었습니다. 경찰이 CCTV에 찍힌 용의자의 모습을 확보했다고 했기 때문이죠. 언론에도 그 모습이 공개됐었고요.

하지만 실상을 달랐습니다. CCTV 영상만으로 알 수 있었던 것은 2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라는 것 하나. 화질이 안 좋아 다른 것은 파악할 수가 없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 발생이후 사건 발생 지역 부근 방범용 CCTV 140여대를 전부 분석했지만 얻은 성과가 없다고 토로했다는 군요. 천만 다행으로 한 마트에 설치된 사설 CCTV에 용의자의 모습이 선명하게 찍혀 용의자를 잡을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직도 미제로 남아 있을 지도 모릅니다.

CCTV 모습(오마이뉴스 자료사진)

CCTV 모습(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지난번 영등포구에서 발생한 ‘김수철 사건’과 비교가 됩니다. 이 사건 당시 학교 주변의 CCTV에 찍힌 김수철의 얼굴이 선명하게 찍힌 덕분에 경찰은 범행 9시간 만에 김수철을 검거할 수 있었습니다.

동대문구는 서울시의 CCTV 설치 권장사항이 41만 화소 이상이라고 하면서 형식적으로는 문제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요즘 유통되는 휴대폰에도 최소 2,300만 화소짜리 카메라가 달려 있는데 CCTV의 화소가 41만 화소라는 것은 CCTV를 장식용, 엄포용으로 사용하겠다는 것밖에 안 됩니다. 아니면 CCTV로 발생할 수 있는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저화소 카메라를 쓴 걸까요? 그렇게 생각해도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는 느낌은 피할 수 없습니다.

아마 비단 동대문구의 문제가 아닐 겁니다. 이번 기회에 전국에 설치된 방범용 CCTV를 살펴봐야 합니다. 진짜 방범용인지 아니면 장식용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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