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사회 이야기

'박근혜 비대위' 출범에도 쇄신 쉽지 않은 이유

어제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한 이후 처음으로 열린 의총이었습니다. 비대위도 구성된 터라 분위기가 좋을 줄 알았는데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더군요. 생각해보니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습니다.

인사말을 하기 위해 단상에 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우리 모두가 쇄신 대상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그저께 비대위원인 이상돈 중앙대 교수가 주장한 '이명박 정부 실세 용퇴론'의 파장을 의식한 발언이었습니다. 친이계가 발끈하고 나서면서 분열 양상이 보이자 긴급 수습에 나선 겁니다.

"한나라당의 변화와 쇄신은 우리가 함께 이뤄가야 할 과제입니다. 쇄신의 주체일 수 있고 쇄신의 대상일 수도 있습니다. 쇄신 과정에서 단정적으로 누구는 쇄신의 주체이고 누구는 쇄신의 대상이라고 해선 쇄신 성공할 수 없습니다."

29일 한나라당 의총에 참석한 박근혜 비대위원장. 출처 : 오마이뉴스


즉, 비대위가 진행하는 쇄신이 친이계를 겨냥한 게 아니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이렇게 박 위원장은 계파 갈등 확산을 경계하며 화합을 강조했지만, 용퇴 대상으로 지목된 의원들은 말문을 닫아버렸습니다.

정문이 아닌 옆쪽으로 본회의장에 들어가면서까지 기자들을 피했던 '실세' 이재오 의원. 이 의원은 본회의 도중 회의장을 나설 때는 정문으로 나왔지만, 용퇴 논란에 대해 '할 말이 없다'며 웃어 넘겼습니다.


이재오 의원. 출처 : 오마이뉴스

"(직접적으로 장관님을 지명한 발언이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허허허."


이상돈 교수가 주장한 용퇴 대상 중에 포함되는 전 당대표 정몽준 의원도 '소이부답'이라며 말을 아꼈습니다. 


"'소이부답'이라고 있죠? 그렇게 적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소이부답'(笑而不答)은 웃기만 할 뿐 대답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남에게 질문을 받고 대답하기 싫어하거나 곤란할 때의 태도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정 의원은 '소이부답'으로 포현했지만, 속은 아마 부글부글 끓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친이계 전여옥 의원은 누구를 나가라고 하는 것은 충격적이라며 '박근혜 비대위'를 비판했습니다.


"나가라 그러면 박근혜 사당을 만들고자 하는 것은 분명 아닐 거 아닙니까?... 박근혜 비대위원장 혼자 남아서 당을 이끌고 그런 모습이 국민이 원하는 모습일까요? 아마 국민들은 겸손하게 보듬으면서 이제 더 이상 국민들께 흉한 꼴 보이지 말고 참고 잘 하자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이런 모습 같은 거는 참 충격적입니다."


쇄신 방향을 둘러싼 논란 끝에 가까스로 '박근혜 비대위'를 출범시킨 한나라당. 그동안 한나라당의 주류였던 친이계 의원들도 재창당 수준의 쇄신에 합의했지만, 내년 총선 '친이 실세 용퇴론'이 불거지자마자 비대위를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27일 출범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출처 : 오마이뉴스


과연 친이계가 발끈할 일일까요? '이명박 정부 실세 용퇴'를 주장한 비대위원인 이상돈 교수의 발언은 상식적인 수준입니다. 한나라당의 위기는 정부, 여당의 주류 인사들이 불러왔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MB 선긋기' 차원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먼저 실정에 대한 책임소재를 가리자는 것이죠. 그래야 한나라당이 비대위를 만들어 추진하고 있는 쇄신도 가능할 테니까요.

하지만, 예상보다 쇄신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비대위에서 아무리 파격적인 쇄신책을 내놓아도 의원들이 말을 듣지 않네요. 탈당 권유를 받은 최구식 의원도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고, 한나라당을 민심에서 멀어지게 만든 이상득, 이재오 의원 퇴진 문제도 계파 갈등만 부각되는 모양새입니다.

이렇게 한나라당이 눈 앞으로 다가온 공천을 두고 '밥그릇 싸움'을 벌인다면 결과는 뻔합니다. 재창당 수준의 쇄신은 고사하고 정말 많은 사람들의 '우려'처럼 도로한나라당으로 주저앉을 수 있습니다. 비대위가 앞으로 계속 내놓는 정책에 대해 한나라당 의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지켜봐야겠습니다.

박정호 기자 트위터 -> http://twitter.com/JUNGHOPARK 우리 트친할까요?^^

p.s 제 글이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 모양의 추천 버튼을 꾹 눌러주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