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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행기

죽기 전 가봐야 할 곳 1위, 그랜드 캐년

투어 시작 2일째. 첫날은 버스를 타고 이동한 게 전부였다. 아침에 여행사에서 버스에 올라 동쪽으로 한참을 달려 점심을 먹고 또 한참을 달려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도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앞으로 반복될 일이었다. 이동 거리가 길어서 어쩔 수 없단다.

오늘부터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이었다. 영국 BBC에서 선정한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 1위 그랜드 캐년(Grand Canyon)이 첫번째 목적지였다. 미국 애리조나주에 위치한 그랜드 캐년은 말 그래도 커다른 협곡. 길이가 447km나 되고 너비가 6~30km, 깊이가 무려 1500m이다.

그러나 자연의 신비를 간직한 그랜드 캐년은 쉽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날씨가 흐리다 했더니 그랜드 캐년 국립공원에 들어서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랜드 캐년을 감상할 수 있는 '매더 포인트' 부근에 올랐을 때 비가 그쳤지만, 그랜드 캐년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안개 때문이었다. 콜로라도 강이 협곡을 따라 흐르고 있어서 안개가 자주 낀다고 했다.

안개가 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그랜드 캐년.



잔뜩 기대하고 포인트에 올랐던 사람들은 크게 실망했다. 이번 5박 6일 일정의 메인 코스인 그랜드 캐년을 감상을 망쳤으니까.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고 포인트에서 내려와 그랜드 캐년에 대한 I-MAX 영화를 감상했다. 영화에는 그랜드 캐년의 역사와 탐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이 먼 곳까지 날아와서 고작 영화만 보고 가야 하나. 영화 속 그랜드 캐년의 멋진 모습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럴 수가. 영화를 보고 나오니 비도 모자라 이제는 아예 함박눈이 내렸다. 5월 하순에 함박눈이라니. 날씨가 좋아질 수도 있다는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버스를 다시 탔다. 눈은 그쳤지만, 하늘은 아직도 먹구름의 세상이었다. 버스는 40분 정도 달려 우리를 다른 포인트로 데려다줬다.

드디어 눈 앞에 드러난 그랜드 캐년.


콜로라도 강이 오랜 시간 동안 깎아 놓은 대협곡.

단층이 색깔이 아릅답다.


안개가 없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버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서 안개 대신 그랜드 캐년의 장관이 살짝 살짝 보였다. 버스 안 사람들은 조금씩 그랜드 캐년이 얼굴을 보여줄 때마다 소리를 질렀다. 탄성과 환호. 방금 전까지만 해도 축 늘어져 있던 사람들은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아름다운 그랜드 캐년이 모습.


솟아 올라온 암벽.

각양각색의 암벽 색깔.


버스가 문을 열자 우리는 포인트로 달려갔다. 세찬 바람도 그대로 불고 있고, 눈발도 날렸지만 다행히 안개가 없었다. 그리고 눈 앞에 들어온 그랜드 캐년. 서방 세계에서 그랜드 캐년을 처음 발견한 스페인 장군이 그랜드 캐년을 보자마자 무릎 꿇고 기도했다는 말이 믿겨졌다.

아무도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놀라운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래드 캐년은 놀라움 그 이상이었다. 어떻게 이런 거대한 협곡이 만들어졌을까. 마치 신이 만들어낸 예술 작품 같았다. 오랜 세월 콜로라도 강이 깎아 냈다는 설명보다 신이 인간을 위해 준 선물이라는 말이 더 그럴 듯해 보였다.

그랜드 캐년의 멋진 모습.

여러가지 색깔을 볼 수 있는 단층.

탄성이 저절로 나오는 단층.


순간 머릿속이 텅 비어 버렸다. 장대한 규모는 보는 사람들을 압도했고, 다시 협곡의 아름다운 색깔과 절벽은 압도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말이 필요 없는 순간, 사람들은 가만히 협곡을 바라보며 가끔 탄성만 내뱉었다.

한참을 포인트와 전망대에서 그랜드 캐년에 흠뻑 젖어 있었다. '헬리콥터나 당나귀를 타고 협곡 아래로도 내려갈 수 있다' '일출, 일몰 등 시간마다 모습이 다르다' 등의 설명에 다른 일정을 포기하고 그냥 그랜드 캐년에 눌러앉고 싶은 욕구가 솟아 오르기까지 했다. 그랜드 캐년은 '다시 찾게 되는 곳'이라는 설문조사를 진행해도 1위를 차지할 것만 같다.

탑 꼭대기에서 카메라에 그랜드 캐년을 담는 사람들.

탑에서 바라본 그랜드 캐년.

탑 내부 모숩.


그랜드 캐년에서 내려오는 길. 버스 안은 기쁨과 안도의 한숨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랜드 캐년을 못 봤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숙소로 가기 전에 글렌 댐이라는 곳에 잠깐 들렸다. 그동안 한국에서도 댐을 많이 봐왔던 터라 시큰둥 했는데 직접 보니 완전히 한국 댐과는 달랐다. 댐 주변 풍경이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댐의 건설 목적이나 활용도보다 댐을 얼마나 자연 친화적으로 건설하느냐가 더 중요한 일이란다. 글렌 댐은 아름다운 글렌 협곡을 그대로 살렸다. 친환경은 환경 그대로, 자연 그대로 놔둘 때에 가능한 일이니까.

댐과 자연이 어우러진 모습.

아름다운 댐 주변 모습.


호텔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는데도 잠이 오지 않는다. 오늘 밤은 쉽게 잠을 자지 못할 것만 같다. 그랜드 캐년의 감동이 사라지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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