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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장자연 편지'가 가짜라도 재수사해야 하는 이유

어제 국립수사연구원(국과수)에 다녀왔습니다. 국과수가 고 장자연씨 친필 편지 감정결과를 발표를 취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된 사안인 만큼 취재진이 정말 많이 왔더군요. 친필논란을 일으킨 편지의 진위 여부가 고 장자연씨 사건 재수사에 큰 영향을 줄 것이 뻔하기 때문.

오전 10시에 시작된 감정 결과 브르핑에서 국과수는 '장자연 편지'가 가짜라고 밝혔습니다. 전모씨가 고 장자연씨로부터 받았다는 편지의 필적이 장씨의 필적과 다르다는 겁니다.

국과수는 공개된 편지 원본과 경찰로부터 받은 고 장자연씨의 친필 노트를 비교분석한 결과 외형적으로는 유사하지만 세부적으로는 다른 필적이라고 밝혔습니다. 특히 국과수는 공개된 편지에는 의도적으로 또박 또박 글을 쓴 개연성이 보인다고 강조했습니다.

양후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과장이 16일 오전 서울 양천구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장자연 친필이라고 주장되던 편지원본은 장자연의 필적과는 '상이한 필적'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양후열 국과수 문서영상과장은 "교도소로 온 편지의 필적은 굉장히 필압이 강하고 또박 또박하다"면서 "이것은 의도적으로 쓴 개연성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SBS가 필적감정 결과 조작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던 'ㅃ'과 '요'에 대한 기자들의 질의가 이어지자 필순은 같지만, 종필처리 부분 등이 달라 같은 필적으로 볼 수 없다고 못박았습니다.

이어 국과수는 공개된 장씨의 편지와 지난 13일 추가 발견된 전씨의 '아내'와 '아내 친구' 명의로 작성된 편지의 필적은 같다고 감정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편지와 전씨의 필적이 동일한지에 대해서는 대조자료가 적합하지 않아 전씨가 편지를 썼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이들 편지와 전 씨의 필적에서 반복적으로 맞춤법을 틀리게 쓰는 습성이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거짖말(장자연으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하는 편지)', '거짖두(전씨의 '아내'와 '아내 친구' 명의로 작성된 편지)', '한짖을(전씨의 필적)'의 'ㅈ'받침, '하듣(장씨에게 받았다는 편지)', '댇가성을(전씨 '아내'가 쓴 편지)'' 져버린듣(전씨 필적)'의 'ㄷ'받침, '않돼(장씨에게 받았다는 편지)', '차않에(전씨 '아내'가 쓴 편지)', '않된다(전씨 필적)'의 'ㄴㅎ' 받침, 그리고 말 줄임표등의 동일성이 있습니다."

김갑식 경기지방경찰청 형사과장이 16일 오후 경기도 수원 경기지방경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장자연 친필이라고 주장되던 편지에 대해 "가짜"라며 "고인과 관계없는 전모씨가 위작한 것"이라며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이로써 최근 공개된 '장자연 편지'로 인한 논란은 일단락됐습니다. 전모씨가 어떻게 장씨 본인의 사적인 내용으로 230쪽에 이르는 긴 편지를 쓸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고인이 직접 쓴 편지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문제는 경찰입니다. 국과수의 감정 내용과 수사 내용을 종합한 경찰은 편지가 진짜가 아니라는 이유로 재수사가 불가능하다면서 새로운 수사단서가 확보되면 언제라도 수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의 발표를 듣고 보니 정말 답답하더군요. 이번 논란이 불거진 이유가 바로 2년전 경찰의 부실수사인데도 경찰은 '편지가 가짜니까 재수사 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네요.

국민들은 아직도 장씨 사건에 대해 의혹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자연 편지'가 공개됐을 때 큰 관심을 보였던 것이고, 수사기관이 한점 의혹없이 진실을 밝혀주기를 원했던 겁니다. 편지의 진위 여부는 사건의 본질이 아닙니다.

경찰이 '고 장자연 편지' 진위를 전모씨의 위작으로 밝힌 가운데, 16일 오후 경기도 수원 경기지방경찰청에서 열린 수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장에 사건 증거물들이 놓여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국민들은 2년전 수사에서 힘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면죄부만 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장씨의 억울함이 전혀 풀리지 않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관행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 국민들의 의혹을 해소하고, 장씨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재수사가 절실합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상황을 어떻게 납득할 수 있겠습니까.

편지는 가짜지만, 장씨의 억울함은 진짜입니다. 편지는 가짜지만, 경찰의 재수사는 진짜여야 합니다. 경찰이 하루 빨리 재수사에 착수해 진실을 밝혀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