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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침출수 퇴비에 '향이 난다'는 정운천의 감탄, 거북했다

어제 정운천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구제역 침출수 퇴비화 시연회'에 다녀왔습니다. 정 최고위원은 경기도 이천에 있는 한 돼지농장에 기자들을 불러 놓고 침출수로 퇴비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지난달 17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구제역 침출수를 활용을 하면 퇴비를 만드는 유기물도 될 수 있다"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정 최고위원이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침출수 퇴비화 시연회를 연 겁니다.

구제역 매몰지 바로 옆에 시연회장이 차려진 탓에 기자들은 모두 방역복을 착용하고 시연회를 지켜봤습니다. 상하의가 일체형은 하얀 방역복과 신발덮개를 생전 처음 입어봤습니다. 정 최고위원과 관계자들은 돼지머리와 침출수를 멸균처리기에 넣어 퇴비화하는 과정을 보여줬습니다.

구제역 침출수 시연회에서 멸균처리기에 돼지머리를 넣고 있는 관계자.

폐사축을 고속 고온 멸균 파쇄건조기에 넣어 170도 내외의 고온에서 멸균, 파쇄하고 톱밥같은 부형제를 넣어주면 퇴비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침출수도 같은 방법으로 멸균한 뒤 부형제를 섞어 퇴비화하더군요.

정 최고위원은 시연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이런 자원화는 돼지와 소한테도 더 좋은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사실은 땅 속에 있는 침출수를 그대로 놔두면 여러가지 세균이 들어가고 하니까 그것을 오히려 자원화하는 것은 돼지, 소한테도 더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구제역 매몰지에서 나온 침출수를 멸균처리기에 넣고 있는 관계자.

또한 정 최고위원은 앞으로 이런 기술이 전 세계적으로 수출될 수도 있다며 축산 농민들에게 위로가 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면 구제역 위기가 기회가 되서 우리가 전 세계적으로 수출을 할 수 있는 것도 되는 것입니다. 우리 축산 농민들에게도 시름을 벗어서 위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 최고위원은 침출수 퇴비에 코를 대고 포즈를 잡으며 "향이 난다"고 감탄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정 최고위원이 보여준 폐사축, 침출수 퇴비화가 현실적으로 구제역 처리에 도움이 될지는 의문입니다. 현행 법상 매몰된 돼지나 소는 3년 동안 꺼낼 수 없고, 설령 꺼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빠른 시일 내에 퇴비화를 시키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구제역 침출수 퇴비화 시연회가 열린 경기 이천 한 돼지농장에 있는 매몰지.

1대당 수천만 원에서 수 억원에 이르는 멸균처리기로 보통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돼지사체는 20마리에서 120 마리 정도. 매몰된 돼지 3백여만 마리를 꺼내 처리할 수 있게 법이 개정돼 현재 전국에 있는 처리기 200 대를 모두 돌린다고 해도 125일, 4개월이 넘게 걸립니다.

어제 통화한 정부 관계자조차 "멸균처리기 사용 등 비매몰방식은 구제역 백신 접종 이후 적은 수의 가축을 처리할 때 쓰는 방법으로 대량처리에 사용하기는 어렵다"고 밝히며 비현실성을 인정했습니다.

구제역 침출수에서 나온 퇴비의 냄새를 맡고 있는 정운천 한나라당 최고위원.

2008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당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졸속 협상으로 국민 건강권을 포기했다는 거센 비난 속에 촛불시위 직후 경질됐던 정운천 최고위원. 정 최고위원은 침출수, 폐사축 퇴비화로 축산 농민들을 위로하겠다고 밝혔지만, 비현실적인 구제역 처리 방안만 내놨습니다.

사실 정 최고위원의 '침출수 퇴비화' 발언에 비난이 빗발친 것은 퇴비화 여부보다 침출수 오염에 대한 우려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 때문이었죠. 어제 시연회보다 정 최고위원이 고개를 숙이고 국민들의 환경오염 걱정에 공감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는데... 현행법상 침출수를 뽑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시연회를 하며 "향이 난다"고 감탄하는 정 최고위원의 모습이 거북하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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