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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동국대 할머니 노동자가 삭발한 이유

가족과 함께 따뜻하게 보내야 할 연말연시. 지나간 한 해를 정리하고 돌아오는 새해를 맞이하는 때이기도 하죠. 우리는 흔히 '희망찬 새해'라는 수식어를 붙여 새해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따뜻하게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지 못하고 추운 거리에 나와 삭발을 해야 하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이 할머니의 소망은 소박했습니다. 단지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으니까요. 누구나 원하는 것이고, 누구에게나 보장된 것, 차별 없는 일터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게 이 할머니의 바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할머니의 소망을 짓밟고 거리로 내몰았습니다. 그리고 머리카락를 깎아야 했습니다.

이 얘기는 2010년 마지막 날이었던 어제 동국대학교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동국대 중앙도서관에서 일하는 김다임 할머니가 삭발을 했습니다. 머리카락이 잘려나갈 때 '대학 다니는 손자가 생각난다'고 했고, 이를 지켜보던 다른 할머니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동국대 청소노동자 김다임(62)씨가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31일 서울 중구 동국대 중앙광장에서 삭발을 하고 있다. 제공 :동국대 시설관리분회

지금 동국대에서는 청소노동자들의 농성이 진행 중입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문제는 일자리였습니다.

동국대학교는 청소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해 최저임금 보장과 업무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자, 지난해 11월 30일 관련 용역회사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업체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 말은 새롭게 동국대와 계약을 맺은 업체가 청소노동자들의 고용을 승계하지 않는다면 100여 명의 청소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겁니다. 이와 같은 상황을 막기 위해 청소노동자들이 세 차례에 걸쳐 고용승계를 요구했지만, 동국대 측은 침묵했습니다. 동국대는 이번주 초 신규 청소업체 채용공고를 냈습니다.

결국 노동자들은 동국대 본관 로비에서 연좌농성을 시작했고, 동국대를 향해 고용승계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제 2년 7개월 동안 동국대 중앙도서관에서 일해 온 할머니가 삭발을 했습니다.

30일 농성을 벌이고 있는 동국대 청소노동자들이 추위를 피해 이불을 덮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최지용


이들은 주 40시간 근무에 85만8990원이라는 법정 최저임금도 받지 못했고, 주 40시간 이상 일하는데도 기본급 75만8990원만 받았다고 합니다. 또한 법정 퇴직금도 70% 정도만 지급받았습니다. 이들은 또 잡초제거나 제설작업 등 청소 업무가 아닌 일에도 부당하게 동원됐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부당한 대우와 관리 직원의 횡포에 청소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자, 동국대는 그로부터 1달 뒤에 청소업체에 계약해지를 통보했습니다. 청소노동자들은 정황상 동국대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자 계약을 해지하고 새로운 업체를 선정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신규업체 대표가 계약이 해지된 회사의 사내이사로 등록돼 있는 점을 볼 때 동국대가 같은 회사와 재계약을 하면서 회사가 바뀌었다는 이유로 노동조합을 만든 청소노동자들을 해고하려고 하고 있다는 겁니다.

지난 29일 동국대 청소노동자들이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본관 로비를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출처 : 지난 29일 동국대 청소노동자들이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본관 로비를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출처 : 서울일반노동조합


할머니 노동자의 삭발, 본관 로비 연좌농성... 제 모교에서 벌어진 일이라 더 가슴이 아픕니다. 저는 학교에서 사회 정의를 배웠습니다. 약자를 위하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상아탑이라는 대학이 부당한 대우를 지적하는 노동자들의 밥줄을 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동국대 명진관 앞에는 부처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그 불상을 보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자는 의미겠죠. 하지만, 정작 동국대는 부처님의 자비심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네요. 이러고도 학생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부끄러운 일입니다.

동국대 동문으로서 모교에 부탁합니다. 지금 당장 청소노동자들과 대화에 나서십시오. 무엇이 문제였는지 듣고 오해가 있다면 풀고, 고쳐야 할 점이 있으면 고쳐야 합니다. 이렇게 계약을 해지해 학교를 위해 열심히 일해온 사람들을 내칠 수는 없습니다.

부디 부처님의 가르침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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