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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민간인 사찰 50건? 드러난 총리실 '꼬리 자르기'

지난주 금요일 오전부터 오후까지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진행된 검찰의 압수수색이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금방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도시락이 들어갔다는 소리가 들려오더군요. 도시락이 들어갔다는 건 압수수색이 점심 때를 넘겨 오후에 끝난다는 뜻입니다. 선배와 점심을 먹고 와서도 한참 기다렸네요.

오후 3시가 다 되어서 압수수색을 마친 수사관들이 나왔습니다. 수사관들은 사과 상자 크기의 상자 2개와 여행용 가방 2개 그리고 하드디스크가 들어있는 것 같은 노란 서류봉투 2개를 들고 돌아갔습니다.

검찰이 가져가는 자료를 보면서도 '이미 중요한 자료들은 다 폐기했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는데 검찰발 기사를 보니 역시 사무실에서 가져간 자료에는 민간인 사찰 부분이 거의 없다고 하더군요. 공직윤리지원관실 사람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총리실이 자체조사를 하겠다며 시간을 끌고 있는 동안 관련 자료들은 다 폐기처분했을 겁니다.

다행히 검찰은 이인규 지원관 등 총리실이 수사를 의뢰를 한 직원이 아닌 실무직원의 사무실과 자택을 추가로 압수수색해 중요한 자료들을 얻었다고 합니다.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오정돈 형사1부장검사)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성동 정부중앙청사 별관에 입주해 있는 공직윤리지원관실 압수수색 마친 뒤 압수물을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경향신문> 보도를 보니 검찰이 압수수색한 자료들을 분석해 김종익 전 대표 외에 50여건의 민간인 불법사찰 정황을 추가로 알아냈다고 하더군요. '민간인인 줄 몰랐다'고 주장한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자료 상으로도 나타나는 대목입니다.

자료와 정황을 확보된 만큼, 이제 검찰은 이 지원관 등 관련 직원들을 직접 불러 철저히 수사해야 합니다. '왜 민간인을 수사했는지' '누구에게 보고했는지' '어떤 불법을 저질렀는지' 다 밝혀내야 합니다. 민간인 사찰 의혹이 늘어난 만큼 검찰의 수사는 앞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또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총리실의 부실한 대처입니다. 총리실 산하 기관의 자료가 인멸되는 것을 막지 못한 것은 총리실 책임이죠. 의지만 있었다면 민간인 사찰 관련 증거가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이것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총리실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총리실의 터치를 받지 않는 기관이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태가 벌어진 이후 민주당 의원들을 만난 정운찬 총리가 모든 자료를 협조하겠다고 하는 것을 분명히 들었는데 권태신 총리실장은 다른 소리를 하더군요. 권 실장은 지난 금요일 관련 자료를 요구하는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기다렸다는 듯이 '검찰이 압수수색 중이라서 못 주겠다'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라고 사실상 자료 공개를 거부했습니다.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자윤리지원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6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총리접견실에서 민주당 '영포게이트' 진상조사특위 조영택 의원이 정운찬 국무총리에게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해 질책을 하자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총리실은 자체 조사에 한계가 있었다며 의혹을 검찰에 수사의뢰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중요한 자료가 나온 곳은 총리실이 수사의뢰를 하지 않은 직원의 사무실과 자택이었죠. 총리실의 말만 믿고 검찰이 수사의뢰한 곳만 수색을 했다면 결정적인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총리실은 '민간인 사찰' 관련 조사 대상 자체를 한정했고, 자료 확보도, 자료 공개도 게을리했습니다. 이와 같은 총리실의 안이한 대처는 민간인 사찰 파장을 이쯤에서 마무리하기 위한 '꼬리 자르기'로 느껴집니다.

총리실은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난 부실조사에 대해 명확한 해명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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