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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00'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남자의 영화다. 찌르고 자르고 죽고 죽이고. 칼춤을 출 때마다 스크린을 적시는 빨간 피세례. 숨이 막힐 것만 같은 스파르타 용사들의 살아 숨쉬는 근육. 마치 만화를 보는 듯한 움직임들. 300의 기억은 강렬하다. 스파르타 레오니다스 왕으로서 300명의 용사와 함께 크세르크세스 왕이 이끄는 100만 페르시아 대군에 맞섰던 제라드 버틀러의 카리스마도 대단했다. 물론 몸도 대단했다. 300을 보고 난 뒤 헬스클럽을 등록한다고 했던 친구들이 여럿 있었으니까. 초식남이 주목받던 시대, 잊고 있던 육식남을 300에서 찾았다는 친구도 있었다. 다행히 나는 헬스클럽도 다니고 있었고 초식남도 아니었다. 어쨌든 300이 준 영화적 충격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2. 얼마 전 '300: 제국의 부활'이 극장에 걸렸다. 제라드 버틀러의 부활인가? 반가운 마음에 훑어본 줄거리에는 제라드 버틀러는 없었다. 대신 에바 그린이 눈에 들어왔다. 300에 에바 그린이라니! 묘했다. 에바 그린을 처음 접한 건 '몽상가들'이었다. 영화 내내 자유를 발산해내는 여인, 그가 바로 에바 그린이었다. 눈부신, 그러기에 더 비루한 청춘들의 몸짓들. 그 속에서 반짝거리던 에바 그린. '007 카지노 로얄'에서 그를 다시 만났을 때 느꼈던 반가움도 아직 기억한다. 성숙해진 외모와 연기가 매력적이었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를 맡아 열연했지만, 나에겐 홀대받았다. 미안한 일이다. 그리고 '300: 제국의 부활'에 에바 그린이라니!

3. 어제 '300: 제국의 부활'을 봤다. 해전이었다. 제라드 버틀러가 육지에서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를 맞아 싸우고 있을 때 에게 바다에서는 페르시아 해군과 그리스 해군이 맞붙었다. 이번에도 사실적인 칼춤과 얼굴로 튀는 듯한 빨간 피세례는 그대로였다. 오히려 '300'보다 더 잔인하고 자극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0'보다는 재미가 덜했다. 익숙한 기법인데다가 해전이라는 조건이 박진감을 갉아 먹은 것 같았다. 드라마적인 요소도 부족했다. 그리스 해군 사령관 테미스토클레스 역을 맡은 설리반 스태플턴의 카리스마도 약했다. 그래도 에바 그린은 빛났다. 페르시아 해군의 지휘관 아르테미시아로 변신한 에바 그린만이 관객들을 숨죽이게 했다. 에바 그린의 표독스러운 악역은 팜므파탈 그 자체였다.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 아니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온몸에 착 감겨 있던 여전사 의상, 얼음장처럼 차갑게 상대방을 쏘아보던 눈빛, 화려하기보다는 귀여웠던 액션. '300: 제국의 부활'은 에바 그린의, 에바 그린에 의한, 에바 그린을 위한 영화였다. 아무리 권선징악이라지만, 마음 속으로 페르시아 해군을 응원했던 남성은 나 뿐이었을까. 속상하게도, 나의 열렬한 응원에도, 영화는 살라미스 해전의 역사적인 사실은 거스를 수 없었다.

4. '300: 제국의 부활'에는 에바 그린의 19금 정사신도 나온다. 사실, 생뚱맞다. 스토리에서 꼭 필요한 장면은 아니었다. 오해하지 마시라. 에바 그린 팬이라서 이런 딴지를 거는 건 아니다. 섹시는 과하지 않을 때 더 매력적인 법인데! 고로 친구 사이 남녀가 편하게 볼 액션영화는 아니다. 편하게 보러 갔다가 어색해질 수 있으니까.

참, 회사 내 영화 소모임 '작은 극장'에서 이 영화를 안 봐서 다행이다. 우르르 몰려 갔다가 괜히 민망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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