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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여행기

33층에서 바라본 마리나베이 샌즈 야경, 마법에 걸렸다

싱가포르의 늦은 오후는 포근했다. 하늘에 있던 헤이즈가 지상으로 내려와 우리를 감싸고 있는 듯했다. 앙뚜앙의 집에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 입어서 그런가. 컨디션이 좋아졌다. 싱가포르의 ‘핫 플레이스’ 티옹바루도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레스토랑과 카페의 야외 테이블을 정리하는 직원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우리는 티옹바루를 벗어나 다시 마리나베이 샌즈 쪽으로 향했다.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우리는 야경을 보러간다.

야외 테이블에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사람들

낮과 밤은 다르다. 밝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밤을 지배한다. 어느 도시든 마찬가지였다. 서울 63빌딩 고층 레스토랑에서 바라보는 야경을 떠올렸다. 한강을 따라 거북이 걸음을 하는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반짝 반짝 빛나고, 아파트 불빛은 저마다의 떨림을 보여준다. 삭막하게만 보였던 회색 빛깔 낮 풍경과 너무나 달랐다. 홍콩의 어느 루프 탑 바의 야경도 잊지 못한다. 우리는 키재기 경쟁하듯 하늘 위로 뻗은 고층 빌딩들 사이에 서 있었다. 그것도 불을 환하게 밝힌 빌딩들. 그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우리만 다른 우주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달달한 음악과 쌉싸름한 흑맥주가 흐르는 은하수 말이다. 도시의 낮과 밤은 달랐다.

싱가포르 강 주변 빌딩 숲

가슴을 탁 트이게 하는 레벨 33에서 바라본 전경

가슴을 탁 트이게 하는 레벨 33에서 바라본 전경

싱가포르의 낮과 밤도 달랐다. 싱가포르 강바람이 살랑 살랑 불어오는 거리 야외 테이블에서 사람들은 이야기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잔디밭에 앉아 ‘치맥’을 즐기는 한강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깨끗해서 좋다’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정 없게 보이기도 했다. 물론 건너편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을 보면 ‘정 없으면 어때’라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보석이 박힌 육중한 기둥 위에 공중 정원이 손짓하고 있었다.

“예쁘다! 빨리 가자~”

또다시 마음이 급해졌다. 야경을 즐기기 위해 고층 빌딩 숲으로 들어갔다. 마리나베이 샌즈를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계속 걸어가니 ‘찜’해 놓은 바의 간판이 1층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리나대로 파이낸셜 센터 타워 33층에 있는 수제 맥주 바 ‘Level 33'이 우리의 목적지였다. ’두근 두근‘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가슴을 탁 트이게 하는 레벨 33에서 바라본 전경

“아~ 시원해~”

야외 테라스로 나가는 순간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탁 트인 눈 앞 전경과 열대야를 날려버리는 바람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멀라이언이 물줄기를 뿜고 있는 주변에서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 주변까지 싱가포르의 보물같은 야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여기 저기에서 사람들이 휴대폰과 카메라를 들고 야경을 저장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반복되는 일상의 활력소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도. 눈을 깜빡거릴 시간도 아깝게 느껴졌다. 예술작품 같았다. 낮에 본 풍경 위에 누가 예쁘게 색칠을 해 놓은 듯했다. 싱가포르와 홍콩이 세계 금융의 허브라고 하더니, 멀라이언 뒤 고층빌딩의 모습은 홍콩을 닮아 있었다. 그 반대편에는 대형 반지처럼 보이는 싱가포르 플라이어 관람차가 영롱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강 위 유람선은 야광 장난감 배 같았다.

마법에 걸린 듯 계속 쳐다보게 되는 마리나베이 샌즈 레이저쇼

마법에 걸린 듯 계속 쳐다보게 되는 마리나베이 샌즈 레이저쇼

마법에 걸린 듯 계속 쳐다보게 되는 마리나베이 샌즈 레이저쇼

마법에 걸린 듯 계속 쳐다보게 되는 마리나베이 샌즈 레이저쇼

그때 갑자기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에서 무언가 나오기 시작했다. 초록색 레이저였다. 마리나베이 샌즈의 레이저쇼가 시작된 것이다. 흥겨운 음악에 맞춰 다양한 색깔의 레이져가 춤을 추었다. 아이의 눈으로 봤다면 마치 우주선에서 레이저를 쏟아낸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음악과 레이져에 마리나베이 샌즈 주변이 물들어 버렸다. 머릿속에는 ‘마법에 걸린 것 같다’는 밀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레이저쇼에 흠뻑 젖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강 위 유람선도 속도를 줄이고 레이저쇼를 즐기는 듯했다. 배 위에서 바라보는 마리나베이 샌즈도 예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일 배 타러 가자!”

그렇게 내일 일정에 '유람선 타기'를 추가하고, 맥주 두 잔과 바베큐 립을 주문했다.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을 배경으로 맥주와 안주를 촬영해보니 그럴 듯한 광고 사진으로 보였다. 아니, 예술작품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마시는 맥주의 맛은 사실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송구스럽게도 ‘직접 경험해보시라’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겠다.

맛있는 맥주와 바베큐 립

먹고 마시는 건 욕구 해결의 목적을 갖고 있지만, 그 욕구 해결을 어디서 누구와 하느냐가 인간에게는 더 큰 의미가 있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가족과 함께 먹었던 된장찌개는 회사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먹는 된장찌개와 다른 된장찌개였다. 같은 맥주라도 레벨 33에서 마시는 맥주는 TV 앞 ‘혼술’과는 맛이 전혀 달랐다. 인간이란 정말 분위기 타는 존재이다.

야외 테이블에서 멋진 풍경과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

하염없이 싱가포르의 야경을 내려다봤다. 이 시간, 그대로 멈춰 버렸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과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이 영원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