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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팬티 6장으로 3년? 비현실적인 최저생계비 품목 기준

'최저생계비는 국민의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을 의미합니다.'

보건보지부는 최저생계비에 대해서 홈페이지에 이와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최저생계비를 받는 국민도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최저생계비를 체험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어림도 없다'였습니다.(물론 황제처럼 살았다는 분도 있습니다만.)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이라는 문장을 '인간적으로 죽게 놔둘 수 없으니까'로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듭니다. 체험자들은 최저생계비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정부는 무슨 근거로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위한 최저생계비를 측정하는 걸까. 찾아보니 생각보다 복잡한 방식이 쓰이더군요. 복지부 산하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먼저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필수 품목에 대하여 최저한의 수준을 정한 다음, 이것을 돈으로 환산(가격×최저소비량)한 총합으로 최저생계비를 책정한다고 합니다.

지난달 1일 오후 이날부터 31일까지 성북구 삼선동 장수마을에서 진행될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의 체험단이 자신들의 생활공간에서 나오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최인성


만약 최저생계비가 터무니없이 낮게 느껴진다면 최저생계비를 산출해내는 필수적인 품목 설정과 최저소비량 측정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겠죠. 모두 370가지 품목별 기준이 있다고 하는데요. 보도를 통해 접한 품목별 기준은 정말 '황당함' 그 자체였습니다. 소도시 4인가족에 적용되는 품목 몇 가지만 함께 살펴보시죠.

-아버지 팬티 6장(3년 사용 기준, 개당 2015원)
-초등학생 반팔 티셔츠 2장(2년 사용 기준, 개당 5000원)
-초등학생 운동화 1켤레(2년 사용 기준, 1만원)
-영화 1년에 1회
-필름 자동카메라 (10년 사용 기준, 4만원)

성인 남성이 3년 동안 2015원짜리 팬티 6장만으로 생활이 가능할까요. 날마다 뛰어 노는 아이가 티셔츠 2장으로 2년을 버틸 수 있을까요. 필름 자동카메라를 10년 동안 쓰라는 건 또 뭐죠? 1년에 영화 한 번 보면 문화적인 생활을 누리는 건가요? 너무나 비현실적인 품목별 기준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총액도 비현실적인 거겠죠.

특히 휴대폰은 필수품목에 없습니다. 2007년 최저생계비를 산출할 때도 '소득 하위 40%에 속한 4인 가구의 96.6%가 휴대전화를 쓰고 있었고, 88%가 휴대전화를 필수품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더 큰 문제는 최저생계비는 각 계층별 특성을 반영할 수 없다는 것에 있습니다. 즉, 소도시 건강한 가구를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주거비나 생활비가 더 많이 드는 대도시 가구나 노인, 장애인과 함께 생활하는 가족에게는 불리합니다.

1일 오후 성북구 삼선동 한성경로당 앞에서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캠페인의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 후 최저생계비를 받은 체험단과 김영배 성북구청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최인성


올해 다시 품목별 계측을 통해 최저생계비 기준이 산출됩니다. 이번에는 현실적인 계측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필수품 중의 필수품인 휴대폰을 품목에 넣는 등 각종 품목의 현실을 잘 반영해야겠죠.

더 나아가 필수품목의 가격과 사용기간으로 최저생계비를 책정하는 것이 아니라, 평균소득 대비 일정한 수준을 최저생계비로 정하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이 방식을 따르면 '국민들이 평균적인 삶에 대한 일정한 비율로 문화 생활과 자기계발 영역까지 담아낼 수 있어 빈곤층의 삶의 질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는 시민단체들의 주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이웃들은 '황제같은 삶'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최소한의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원할 뿐입니다. 이번에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이 가능한 현실적인 최저생계비가 책정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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