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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무상급식'이 쇼라던 이재오의 씁쓸한 급식 봉사

7.28 재보선 은평을에 출마한 이재오 한나라당 후보의 공식 선거운동은 '무료급식 봉사'였습니다. 어제 한 교회를 방문한 이 후보는 앞치마를 두르고 직접 밥과 반찬을 그릇에 담아 사람들에게 나누어줬습니다.

식사를 전달하면서 이 후보는 "잘 계셨죠?" "요즘 돈벌이는 어때요?"라는 말을 건네며 친근하게 사람들의 어깨를 감싸고 손을 잡았습니다. 41년 동안 이 지역에서 살아와 지역을 잘 안다는 이 후보가 친밀감을 강조한 겁니다.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맞으며 이 후보는 식사를 계속 날랐고, 옆에 있던 보좌관은 "웃으세요~"라는 말을 계속 건넸습니다.

이 후보는 미처 반찬을 담는 모습을 촬영하지 못한 언론사를 위해 두, 세차례 포즈를 잡는 '친절함'까지 보여줬습니다. 봉사를 하는 건지 화보를 찍는 건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습니다.

15일 은평구의 한 교회에서 무료급식 봉사를 하는 이재오 한나라당 후보.


물론 정치인들이 무료급식소를 찾아 봉사하는 모습은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예로 지난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던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도 '밥퍼' 현장을 찾아 포즈를 잡았었죠. 서민들을 위해 열심히 한다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전략의 하나입니다. 정치인들은 내가 당선되면 '밥 문제를 해결해준다'라는 연상 작용이 유권자들에게 일어나기를 바라는 겁니다.

공식 선거운동 첫날 무료급식에 나선 이재오 후보도 비슷한 바람이 있었겠죠.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야당 후보들과 대비되는 지역일꾼 이미지, 서민 이미지 부각시키려는 의도 말입니다.

하지만, 제 눈에는 이런 이 후보의 모습이 씁쓸하게 느껴졌습니다. 불과 4개월 전만해도 이 후보는 초등학생 무상급식을 '쇼'라고 지적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3월 이 후보는 국민권익위원장 신분으로 서울의 한 초등학교를 찾았습니다. 이 후보는 교육청 관계자와 교장, 영양사 등과 함께 급식 관련 간담회를 했었는데요. 저는 그 당시 이 후보의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한 고등학교를 찾아 급식봉사를 하는 이재오 당시 국민권익위원장.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이 후보는 '초중고등학교 무상급식 전면실시에 연간 1조원이 든다'는 교육청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세금 더 내라고 하면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나요? 결국 국민들이 그만큼 세금을 더 내줘야 하는 거죠. 그리고 월급 받는 직장인들은 월급에서 세금을 더 내야 하니까 그 돈이 그 돈이죠. 세금을 더 내라 그러면 사람들이 다 싫어하죠. 그 문제가 요즘 선거철이라 신문에서 그걸 많이 봤는데 서울에만 1조원이라..."

그러면서 이 무상급식 주장을 선거를 의식한 포퓰리즘으로 비하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좀 봐야죠. 왜냐하면 나라의 예산규모라는 게 있는 거니까, 그게 인기만 갖고는 안 되잖아요."

국민의 권리보호와 구제를 위한다는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었던 이 후보는 예산부족과 포퓰리즘이라는 이유로 무상급식을 쇼로 치부해버린 겁니다. 4대강 사업에 몇 십조를 쏟아 붓고 있는 정부에서 예산부족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었습니다.

15일 은평구 대조동에서 유권자에게 명함을 건네고 인사하는 이재오 한나라당 후보. 촬영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 교육감 선거결과가 어땠습니까. 서울과 경기 등 전국적으로 무상급식을 주장하던 교육감들이 당선됐죠. 무상급식을 요구하는 민심이 표출된 결과입니다.

권력실세로 한반도 대운하 전도사 역할을 했던 이 후보는 어제 "대통령을 도와서 서민경제를 살리는 게 이 정권 하에서 제 도리가 아니겠냐"는 말도 했습니다. 서민경제를 살리겠다고요?  글쎄요. 저는 별로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무상급식을 인기 때문에 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던 이 후보가 카메라 앞에서 무료급식 봉사 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 더 못 믿겠습니다.

은평을 4선에 도전하는 이 후보는 당과의 거리를 두기 위해 한나라당 지도부에게 "나 살리려면 오지말라"고 말했는데요. 이 후보가 제대로 된 진정성을 보이려면 민심에 역행했던 행동에 대한 반성부터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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