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사회 이야기

아동 성범죄, 정신과 의사들 조언 살펴보니

"정말 딸 낳기 무섭다."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꼭 듣는 얘기입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아동 성폭력 때문에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제 친구들이 세상이 무섭다, 딸 낳기 무섭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범죄가 무서워 아이를 낳기 무섭다니. 세상이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요. 우리 사회가 정말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입니다.

하지만 막상 예방을 하려고 보면 어떻게 해야할 지 막막합니다. 부모들이 아이들 곁에 항상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어렵죠. 그렇다고 공권력이 항상 지켜주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또한 성범죄를 당한 이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와 관련해 함께 읽어보면 좋을 글이 있어서 제 블로그에서 나누려고 합니다. 어제 대한청소년정신의학회 소속 의사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동 성폭력 사건에 대해 입장을 발표했는데요. 성폭력 사건에 대한 정신과 의사들의 전문적인 해석과 판단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씩 살펴보죠.

1. 아동 성폭력 사건, 알려지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미국의 경우 일어난 아동 성폭력 사건 중 10%만이 타인에게 인지가 된다는 보고가 있다고 합니다. 성 문제를 금기시 하는 우리 사회적 분위기를 볼 때 우리나라의 경우 그 비율이 1%에 미치지 못한다고 의사들을 보고 있는데요. 그래서 최근 자주 보이는 아동 성폭력 보도가 실제적인 성폭력 빈도의 증가가 아닐 거라고 합니다.

이런 보도를 통해 사회나 어른들이 이전에는 관심을 덜 가졌던 아이들의 인권과 정신적인 고통에 관심이 늘어나면서 공론화되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건데요. 외국의 사례에 비추어볼 때 공론화의 과정을 통해 아동의 인권은 보다 나아지고 성폭력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제6회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에 참석한 관객들. 출처 : 한국성폭력상담소

2. 아동 성폭력, 과장된 반응은 금물이다.

부모의 냉정한 대처가 필요합니다. 물론 힘든 일이겠지만, 이차적인 후유증을 예방하기 위해 부모의 안정된 태도는 필수적이라는 게 의사들의 조언입니다. 부모가 지나치게 흥분하고 불안한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일이 종종 있는데 아직 정확한 상황 판단도 안 된 상태에서 부모가 적개심 등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이에게 다그쳐 물어서는 안 됩니다. 부모가 심각한 반응을 보일 경우 아이에게 주어지는 심리적 후유증은 더 커질 수 있다는 거죠.

3. 아동 성폭력에 대한 선정적 보도 하지 말자.

최근 성폭력을 다루는 언론의 입장을 보면 사건에 대해 너무 자세하게 다루어서 어느 지역에서 발생하였는지 추측할 수 있는 정보까지 제공하고 있다는 게 의사들의 지적입니다. 위치가 어디인지 짐작이 가는데 그 학교의 한 여자아이가 그날 결석을 하였다면 아이는 친구들로부터 네가 당한 것 아니냐는 전화를 받게 된다는 겁니다. 아이와 가족들에게 더 큰 상처가 되는 일입니다. 성범죄가 발생한 이후 제복을 입은 경찰관이 아동의 인적 사항 조회를 위해 학교를 공개적으로 방문하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언론과 경찰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대목입니다.

4. 우리 아이들은 좀 더 보호받아야 한다.

일회성으로 벌어지는 아동 성폭력은 저소득층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에게 주로 발생하고 있죠. 의사들은 많은 저소득층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보호 감독할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만족을 위해 아동을 이용하는 나쁜 어른들에게 노출되어 있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넷 등의 대중매체에 무방비 적으로 노출되고 그렇게 접한 것을 서로에게나 다른 아이들에게 행동화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을 돌봐줄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현재의 아동 성폭력 문제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며 희생자들의 눈물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입니다.

진주시 아동, 여성인권 기관 회원, 아동, 학생, 학부모 100명은 9일 진주시내에서 아동과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고 여성과 아동들이 안전하게 밤에도 다닐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달빛축제를 가졌다. 사진은 이 날 행사에 참여한 학부모들이 아동성폭력의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홍보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 촬영 : 오마이뉴스 정희성



5. 부모 자녀의 좋은 관계가 성폭력 피해 예방에도 중요하다.

의사들은 가정 내 성교육을 성폭력 피해 예방책으로 꼽았습니다. 가정에서의 가장 좋은 성교육은 발달 연령에 맞추어 부모가 적절한 반응을 해주는 거죠. 또한 부모가 먼저 건강한 성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면 아동은 자연스럽게 성에 대해 편안하게 습득하게 된다고 합니다. 평소 부모-자녀 관계가 중요하며, 튼튼하고 친한 부모-자녀 관계가 부적절한 성적 행동을 차단할 수 있는 예방책인데요. 또한 부모-자녀 관계가 튼튼하면 필요할 때 사소한 행동변화를 부모가 파악할 수 있어서 유리합니다. 부모 자녀 관계가 좋지 않으면 아동이 성폭력을 당하더라도 부모에게 도움을 조기에 청하지 않아 조기 개입이 어려워집니다.

잘 읽어보셨나요.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아동 성폭력은 가정, 공권력, 언론 등 모든 영역이 유기적으로 반응하고 노력해야 예방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약자들을 배려하는 시스템 구축도 절실하죠.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 나의 일로 생각하고 대처할 때 아동 성범죄는 사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 사회가 풀어내야 할 숙제입니다.

p.s 제 글이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 모양의 추천 버튼을 꾹 눌러주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