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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스님들이 청계광장에서 1080배를 한 이유

체감온도가 영하 20도까지 떨어진 어재 오전 서울 청계광장. 방석 한 장만 놓인 꽁꽁 언 돌바닥 위로 스님들이 쉴새 없이 절을 했습니다. 맹추위에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든 상황. 하지만, 스님들은 죽비 소리에 맞춰 엎드렸다 일어났다는 반복했습니다.

그래도 저를 포함한 기자들은 털모자, 외투 등으로 '완전 무장'하고 스님들의 절하는 모습을 취재하고 있었지만, 스님들은 칼바람을 온 몸으로 다 맞고 있었습니다.

조계종 총무원 산하기관 스님들과 직원 등 3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오전 10시부터 진행된 '민생 안정과 민족문화 수호를 위한 1080배 정진' 행사는 오후 1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습니다.

처음에는 잘 맞던 호흡이 1080배에 가까워 질수록 잘 맞지 않았고, 유연하게 몸을 굽혔다 폈던 스님과 직원들은 얼어 붙은 입으로 가뿐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지난해 연말 한나라당의 예산안 날치기 통과와 4대강 공사 강행,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에 반대하며 조계종이 대정부투쟁을 선포한 가운데 10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승려 40여명과 종무원 직원 등 200여명이 참석한 이명박 정부의 사과와 반성을 촉구하는 '민생안정과 민족문화 수호를 위한 1080배 정진' 행사가 열렸다. 촬영 : 오마이뉴스 권우성

기록적인 한파 속에 스님들은 왜 청계광장으로 나왔을까? 그 차가운 돌바락 위에서 왜 절을 했을까?

스님들이 1080배를 하는 동안 몇몇 직원들이 청계광장 주변을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나누어준 '서울 시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라는 전단지에 답이 있었습니다.

전단지에는 "공정하여야 할 정부가 종교, 학벌, 지역을 기준으로 한 특정 집단이나 세력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여러 사회적 논란거리들을 일방적인 밀어 붙이기로 정부의 입장만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행태가 계속 됐습니다"라는 글이 인쇄되어 있더군요. 그동안 정부가 보여줬던 4대강 사업 등 핵심 정책들이 일방적인 밀어 붙이기였다는 겁니다.

매서운 추위에 1080배 정진 참가자들이 힘들어 하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권우성

또한 "종교간 갈등을 조장 방조하고 활용하려는 현 정부의 종교 정책이 이제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지경"이라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전단지 말미에는 "국민 여러분과 함꼐 하는 한국불교가 되도록 정신하겠다"는 다짐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스님들이 청계광장에 나온 이유는 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과 종교 편향을 비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조계종은 국민과 함께하는 불교가 되기 위한 자기 성찰과 종교 편향, 민주주의의 후퇴를 불러온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규탄하기 위해 1080배 정진에 나서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조계종 총무원 대변인을 맡고 있는 장적스님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민족 문화에 대한 편향된 정책을 갖고 있어서 국가가 지정한 80% 이상의 불교 문화재를 마치 특정한 종교에 특혜를 주는 양 편향된 정책을 펴고 있어서 저희들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서 산문을 폐쇄했다"면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도 성찰을 통해서 우리 민족 문화를 올곧게 보존하고 관리하는데 함께 하는 뜻으로 청계광장에 나와서 정진하게 됐습니다."

방석 한 장만 놓인 꽁꽁 언 돌바닥 위로 쉴새 없이 절을 하는 스님들. 촬영 : 오마이뉴스 권우성

특히 조계종은 이명박 정부에 참된 깨우침을 주기 위해 1080배 정진 장소로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치적인 청계광장을 택했다면서 앞으로도 정부와 한나라당과 화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청계광장은 이명박 대통령을 만든 1등 공신이죠. 이 대통령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킨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렇게 정부와 여당에 의미가 깊은 청계광장에서 1080배를 한 것 자체가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으로 촉발된 불교계와 정부, 여당 사이의 갈등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어제도 스님들은 정부, 여당의 편향된 민족문화 정책을 참을 수가 없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스님들과 함께 1080배 정진을 했던 직원들도 '그동안 불교에 대한 정책이 불평등하게 이루어졌다'면서 이명박 정부의 종교 편향을 거듭 지적했습니다.

한파 속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의 상징인 청계광장에서 정권 규탄 1080배 정진을 강행한 조계종. 조계종은 오늘 오전 10시 조계사를 비롯한 전국 3천여 개 사찰에서 동시법회를 열어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에 대한 규탄을 이어나갑니다. 법회가 끝나면 스님들과 불자들은 3보 1배로 규탄의 강도를 높여나갈 예정입니다.

죽비 소리에 맞춰 1080배를 하고 있는 스님들. 촬영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걸로 끝이 아닙니다. 18일에도 조계종은 청계광장에서 1080배 정진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전국 사찰의 정부, 여당 규탄 동시법회도 계속됩니다.

점점 정부와 여당이 가만히 숨 죽이고 넘어가기 힘든 상황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성난 불교계를 달래는 길은 딱 두가지 입니다. 먼저 불교계가 느낀 종교 편향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를 해야겠죠. 돈이나 예산으로 덮고 가보자는 주장은 오판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온 여러 가지 사업과 정책을 멈춰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 정부와 여당이 이런 불교계의 요구를 받아 들이지 않는다면 스님들의 1080배는 계속 이어질 겁니다. 그것도 이명박 대통령의 치적으로 꼽히는 청계광장에서.

양을쫓는모험(박정호) 트위터 주소 -> http://twitter.com/jungho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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