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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여행기

[싱가포르 여행기] 놀이동산 산책 같았던 한낮의 클락 키

건너편 마리나 베이 샌즈를 바라보며 걸었다. 한낮 더위에 지친 여행자들이 카페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 아이스 커피를 마시며 마리나 베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우리라. 플러튼 베이 호텔의 깔끔한 로비를 둘러보고 꽃이 핀 발코니를 구경했다. 모든 게 규칙에 따라 잘 정돈된 느낌이었다. 마치 연극 무대를 걷는 것 같았다.

그때 물 위로 배가 잔잔한 물살을 가른다. 아담한 유람선이었다. 꽁무니 쪽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고 마리나 베이 샌즈를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배는 한 척만 있는 게 아니었다. 왼쪽 다리 아래 또 한 척의 배가 살금살금 미끄러지듯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저 배는 어디서 오는 걸까?'


클락 키에서 마리나 베이로 항해한 유람선


MRT를 타고 클락 키 역에서 내렸다. 밖으로 나와 마주친 모습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싱가포르 강은 헤엄쳐 쉽게 건널 수 있을 것 같은 좁았다. 강변에 서 있는 파스텔 색 건물들이 이색적이었다. 아이들이 크레파스로 색칠한 것처럼. 작은 선착장에는 마리나 베이에서 봤던 유람선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




갑자기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 났나.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미처 알아 채지 못했던 장면이 보였다. 팽이를 닮은 장치가 하늘로 솟구쳤다.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번지점프가 아니라 땅에서 하늘로 날아가는 번지점프 같았다. 보기만해도 아찔한 놀이기구에 올라탄 여성들이 소리를 지른 것이다.  



"우와~재밌겠다!"

평소에도 놀이기구 타는 걸 좋아하는 아내의 탄성이었다. 앗, 이때 필요한 건 바로 '스피드'였다. 못 들은 척 빠른 걸음으로 앞서 나갔다. 

클락 키(Clarke Quay)는 영국 총독의 이름이 붙여진 곳이다. 과거 싱가포르 강을 따라 교역되던 상품들이 이곳 클락 키 창고들에 보관됐다고 한다. 클락 키를 기준으로 오른쪽 부두 보트 키((Boat Quay)와 왼쪽 부두 로버트슨 키(Robertson Quay)는 싱가포르 강의 교역이 활발하던 시기에 번성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예전의 부두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이 지역들은 쇠퇴해 갔다. 





그러다가 1970년대 이후 강변이 개발되면서 이 지역은 다시 태어났다. 아름다운 레스토랑과 핫한 술집들이 생겨나면서 활기를 띄게 된 것이다. 지금은 싱가포르의 명소가 됐다. 특히 음주가무를 사랑하는 여행자들에게!





하지만 아직은 이른 시간인지 대부분의 가게들은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문을 아직 열지 않은 곳도 있었다. 대신 산책하기에는 좋았다. 마치 예쁜 놀이동산 사이를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비명소리도 간간이 들리니까. 밤에 다시 오자는 마음을 먹고 다시 MRT역으로 향했다. 

다음 행선지는 차이나타운. 그곳에 있는 여행사에서 각종 티켓을 구매하는 게 싸다고 했다. 우리도 나이트 사파리 티켓을 사기 위해 꼭 들러야 하는 코스였다. 헤이즈가 아침부터 해를 가리고 있었지만, 더위는 가리지 못했다. 다시 한번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을 가볍게 해야 했다. 주변 패스트푸드점에서 시원한 탄산음료와 프렌치 후라이를 먹었다. 늘어졌던 몸에 활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역시 당 충전의 효력은 금세 나타났다. 

"홍콩에 와 있는 것 같아."

그랬다. 싱가포르 차이나타운은 꼭 싱가포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홍콩의 시장 골목처럼 중국식 음식을 파는 가게들과 노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중국에서 맡아봤던 향이 계속 코를 찔렀댔다. 바쁘게 걷는 사람들이 많아서 두리번 거리는 관광객들이 튀어 보였다. 차이나타운 뒤로 고층빌딩이 희미하게 보였다. 입구가 많아서 헷갈렸지만, 다행히 우리는 길을 잃지 않고 여행사를 잘 찾아갔다. 물론 최적의 경로 탐색에는 실패했지만 어쨌든 티켓 구매에 성공했다. 게임 미션을 '클리어'한 듯 뿌듯했다.


늦은 오후, 하루 종일 땀에 젖은 옷을 '싱가포르 집'(앙뚜앙의 집이지만..)으로 가서 갈아 입고 야경을 보러 가기로 했다. 앙뚜앙은 집에 있을까. 서울이든 싱가포르든 집에 가는 길은 즐겁다. 언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