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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여행기

[싱가포르 여행기] 쇼핑몰에 운하가!

카야잼의 달콤함을 입 안 가득 머금고 우리는 싱가포르 지하철 MRT(Mass Rapid Transit)를 탔다. 서울 지하철보다 여유로웠다. 출퇴근 시간이 아니라서 그럴까. 각양각색의 승객들이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대부분 여행객들로 보였다. 생김새는 달라도 행선지는 아마 같았으리라. 바로 싱가포르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호텔 마리나 베이 샌즈로!


빨간색 라인에서 주황색 라인으로 갈아타고 베이프런트 역에서 내렸다. 대형 쇼핑몰이 있다더니  역시 쇼핑백을 든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헉...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놀라웠다. 에메랄드 빛 운하 위에 배가 떠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몇 정거장 왔을 뿐인데, 마치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 와 있는 듯했다. 동상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한참을 운하를 왔다갔다 하는 배를 바라봤다. 배에 탄 사람들은 서로 사진을 찍어주느라 바빴다. 운하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운하라니, 신선한 충격이다. '운하'라는 말에 정말 충격적이었던 '한반도 대운하' 주장이 잠시 떠오르기도 했지만.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지하에 자리 잡은 쇼핑몰 '더 숍스'는 오차드 로드의 쇼핑몰과 다른 차원의 쇼핑몰이었다. 


운하를 보며 차 한잔~채광 좋은 쇼핑몰


"정말 다른 세상 같아!"


아내가 입을 벌리고 서 있는 내 손을 잡아 앞으로 끌어 당겼다. 지하2층부터 지상1층까지 300여 개의 가게들이 화려한 간판을 걸고 있다고 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하며 쇼핑몰을 둘러봤다. 노천카페처럼 운하를 바라보며 차를 마실 수 있는 곳도 보였다. 끈적한 더위를 피하기에는 최고였다.


해가 질 때까지 '탐험'을 하고 싶은 마음과 뭐라도 사고 싶은 욕망을 꾹 참고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날씨는 끈적했지만, 다행히 햇살은 헤이즈를 뚫고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푸른 야자수 아래 연꽃이 가득한 뜰이 예뻤다. 그 뒤로 서 있는 고층 빌딩 숲이 병풍 같았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의자에 앉아 연꽃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고 있었다. 


고층 빌딩이 병풍 같았다


연꽃으로 채워진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앞뜰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을 등지고 나와 오른쪽 방향으로 산책을 시작했다. 여기도 대형 연꽃이 피었다. 연꽃 모양의 '아트 사이언스 뮤지엄'이었다. 뮤지엄을 지나 다리를 건너자 드디어 거대한 마리나 베이 샌즈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지상 200m 위 꼭대기인 스카이 파크는 하늘을 향해 항해를 시작할 것만 같은 크루즈처럼 보였다. 저 위에 수영장이 있다고 하는데 투숙객을 위한 공간이란다. '앙뚜앙 호텔'에도 수영장이 있으면 좋으련만. 멋진 건축물을 볼 때마다 '정말 인간의 한계는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빨리 반대편으로 건너가자. 랜드마크의 전체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연꽃 모양의 아트 사이언스 뮤지엄


금방이라도 날아 오를 것 같은 스카이 파크


싱가포르 플라이어라고 불리는 관람차와 과일 두리안을 닮은 에스플러네이드를 눈에 담고 나니 사자 얼굴의 동물상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입에서 물줄기를 시원하게 뿝어내고 있었다. 대형 멀라이언(Merlion)상이었다. 싱가포르의 마스코트라고 했다. 사자 머리에 물고기 몸을 하고 있는 '퓨전'스타일이었다. 쉽게 볼 수 없는 '스타일'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인증샷 찍기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물론 우리도 그 경쟁에 합류했다. 물줄기를 입안으로 넣는 '착시 인증샷'을 시도한 건 비밀이다.


눈 앞에 펼쳐진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파노라마


한참을 웃으며 멀라이언의 물줄기와 밀당을 했다. 그제서야 눈 앞에 마리나 베이 샌즈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마치 SF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배 모양 우주선의 정박, 그리고 연꽃 모양의 기지. 


'자, 헤이즈가 걷히면 출동한다! 출동 태세를 유지하도록!'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는 멀라이언


멀라이언 인증샷 놀이에 푹 빠진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갑자기 크게 들렸다. 물줄기 앞에서는 모두 다 아이가 되나 보다. 아니, 나의 공상을 엿들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