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사회 이야기

무상의료 도덕적 해이? 맹장 두 번 못 뗀다

최근 보편적 복지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무상급식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보편적 복지가 이제 무상의료, 무상보육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데요. 한쪽은 보편적 복지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고 다른 한쪽은 이런 모습을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고 있죠.

저는 이런 논쟁은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복지에 대해서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진국으로 가는 길에서 복지를 피할 수 없습니다. 복지는 선진국행 열차 티켓과 같은 것입니다. 국가가 국민의 최소한의 삶을 책임지는 사회, 그게 바로 선진국이죠.

그래서 지금부터 치열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복지가 무엇인지, 어떻게 실시해야 하는지, 왜 필요한지 등등 우리가 간과했던 부분들을 모두 끄집어 내 토론해야 합니다. 특히 대선과 총선을 1년 여 앞둔 상황에서 복지는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대선 당시 경제 발전이 화두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10일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무상의료 실현가능성 관련 토론회.

어제 민주당에서 주최한 무상의료 실현가능성에 대한 토론회에 다녀왔습니다. 민주당의 무상의료 정책에 대해 전문가들이 평가하고 제안하는 자리였습니다.

참석자들은 무상의료가 환자 급증 등 도덕적 해이나 건강보험의 재정악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정부와 보수언론의 주장을 비판하며 정부가 정책의 우선순위만 바꿔도 의료비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김용익 서울대 교수는 "(무상의료 때문에) 의료의 오남용이 우려되고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될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전후를 잘 가리지 못하는 것"이라면서 "건강보험은 목적이 가정경제를 보호하고 적절한 시기에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 목표를 먼저 달성하고 낭비 요인이 발생하고 모럴 해저드가 발생하는 등등은 그 다음에 그걸 놓고 고쳐나가야 되는 거죠. 정책 판단의 우선 순위를 그분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죠."

10일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무상의료 실현가능성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김용익 서울대 교수.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소비자의 도덕적 해이라는 부분은 보건의료 부분에서 잘 존재하지 않는다"며 "맹장을 두 번 뗄 수 있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토론자들은 현재 최고 400만 원인 건강보험 적용시 국민 1인당 연간 의료비 본인부담 상한선을 100만 원으로 대폭 낮추고 39% 수준인 입원 진료비 본인부담률을 10%로 줄이겠다는 민주당의 정책 방향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국민들이 민주당의 '무상의료'라는 목표에 부합하는 혜택을 보기 위해서는 영유아 예방접종이나 선택 진료 등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의료 서비스를 보험에 포함하는 조치가 함께 실시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10일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무상의료 실현가능성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김용익 서울대 교수는 "모든 의료 서비스에 대해서 건강보험에 집어 넣어서 건강보험 수가로 묶어 놓지 않는 이상 90%의 급여 확대는 불가능하다, 시행도, 유지도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토론자들은 과잉 진료에 대한 관리 감독 강화와 약제비 절감 방안 등도 주문했습니다.

우석균 정책실장은 "한국의 척추 수술 일본보다 7배 많다"며 "의료 공급자 규제를 하지 않으면 한국에서의 무상의료는 힘들어질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민주당의 무상의료가 중간 계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빈곤층 의료 서비스에 대한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특히 일부 참석자들은 민주당이 공공 의료체계 붕괴를 불러올 제주도 영리병원 도입에 반대하지 않고 있다며 이로 인해 무상의료에 대한 민주당의 진정성이 의심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박원석 참여연대 합동처장은 "영리 병원 쪽으로 추가 기운다면 무상의료의 진정성에 의심을 받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될 것"이라며 "단순히 영리 병원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건강보험 체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것은 무상의료 정책이라는 측면에서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10일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무상의료 실현가능성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박원석 참여연대 정책실장.

물론 무상의료를 비롯한 보편적 복지 추진을 위해서는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재원 마련입니다. 민주당 등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4대강 사업 예산과 부자감세만 철회해도 상당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국민들은 더욱 더 자세하고 실현가능한 대책을 듣고 싶어 합니다.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세세한 정책과 재원 마련 방안이 나와야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을 피할 수 있을 겁니다.

민주당은 오는 7월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그리고 반값 등록금 등 이른바 보편적 복지 3+1에 대한 실현 방안 발표 전까지 각계 전문가들의 협조를 받아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과 정책을 확정할 방침이라고 하던데요.

유력한 대권주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맞춤형 복지'를 내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복지는 언제까지나 진보의 아젠다일 수는 없습니다. 누가 더 설득력이 있느냐의 싸움입니다. 선택은 국민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민주당이 국민들이 믿고 따를 만한 보편적 복지의 설계도를 그려내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p.s 제 글이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 모양의 추천 버튼을 꾹 눌러주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