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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불법사찰 피해자 김종익 씨가 분노하는 이유

전 국민을 경악하게 했던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지금 이인규 전 지원관 등이 구속돼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아직도 국민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여론 때문인지 어제 국회 정무위의 국무총리실을 상대로 한 국정감사에서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사안의 민감성 때문인지 오전 질의에서는 여야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습니다.

야당은 민간인 불법사찰에 청와대 등의 윗선이 개입했다고 주장했고 여당은 민간인에 대한 사찰의 부당성을 부각시켰습니다.

박병석 민주당 의원은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이 청와대에 일주일의 한번씩 사찰 내용을 보고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박선숙 민주당 의원도 윗선의 비호 없이는 민간인 불법사찰은 일어날 수 없었을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불법사찰을 지시한 윗선이 청와대라는 겁니다.

또한 이성한 한나라당 의원은 공직윤리관실이 경찰청, 국정원 등의 내부망 회선으로 차적조회를 한 대상자 명단을 총리실이 제출하지 않고 있다며 합법적인 공직자만 조회한 거라면 그 내용을 숨길 이유가 뭐냐고 지적했습니다.

권태신 전 국무총리실장(오른쪽)이 4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 국무총리실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총리실 불법사찰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총리실 불법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NS한마음 전 대표(왼쪽)가 증인으로 참석하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하지만, 오후 질의에서는 현경병 한나라당은 다시 색깔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증인으로 출석한 사찰 피해자 김종익 씨가 '불온 사상자'라는 겁니다. 김 씨가 '조선노동당 연구'나 조정래의 '아리랑' 등을 읽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조선노동당 연구'는 합법적으로 허용된 박사학위논문이고, '아리랑'은 합법소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서적을 읽었다고 '불온 사상자'라고 생각하다니. 여당의 색깔론 공세에 다시 한번 고개를 흔들게 됐습니다.

현 의원이 몰아붙이자 어제 질의 내내 별 말이 없었던 김 씨가 위원장에게 발언권을 신청해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김 씨는 그동안 억울하고 서러웠던 심경을 솔직하게 얘기했습니다.\

김 씨는 이 사건을 겪으면서 관심을 갖고 생각한 것은 국가가 국민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다"라며 입을 열었습니다.

"국무총리실에서 고발해 불법행위를 한 당사자들이 구속됐고 재판을 받고 있는데, 아직까지 정부쪽에서는 한번도 사과 등 연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루 아침에 생계수단을 뺏기고 정신적 물질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제가 이 나라의 국민이 아닌 것처럼 대하는 정부의 처사에 분노를 금할 수 없습니다."

김 씨는 불법사찰이라는 행위보다 정부 기관의 잘못된 행위로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는 국민에게 국가가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을 지적한 겁니다.

이어 김 씨는 "미국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곰즈씨를 데리고 돌아갔는데, 영토 밖의 국민의 안전을 위해 이런 조치를 하는 미국을 보면서 이런 나라의 국민들은 얼마나 국가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까 생각했다"면서 "민간인 불법사찰은 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다. ‘정부에서 사과나 보상이나 원상회복에 대한 조치가 있었느냐’고. 내가 ‘아직은…’이라고 대답하면 그분들은 분노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분 들이 왜 분노하겠는가를 생각하면, 국가가 국민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 모욕적이기 때문에 그 분들이 분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이 문제가 정파 간에 정치적 공방이 아니라 국가의 불법에 의해 피해 입은 개인의 눈물을 닦아주는 자리이어야 한다고 부탁드린다, 나의 이런 부탁이 염치 없는 부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러분들이 국민을 대표해 국회에 나오신 분들이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4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 국무총리실 국정감사에서 김종익 NS한마음 전 대표와 권태신 전 국무총리실장, 원문희 전 국민은행장 노무팀장(왼쪽부터)이 출석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이날 불법사찰과 관련해 채택된 증인은 모두 12명, 이 중 고작 3명만 출석하자 여야 의원들이 동행명령장을 발부했다. 촬영 : 오마이뉴스 유성호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사찰 때문에 김 씨는 직장도 그만둬야 했고, 그동안 쌓아뒀던 인간관계도 모두 끊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김 씨에게 보상은 커녕 사과조차 하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명백한 정부기관의 불법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연락도 없는 상황입니다.

어제 증인으로 출석한 권태신 전 국무총리실장도 민간인에 대해 불법 조사를 했다고 한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를 해야 한다고 밝혔지만, 옆에 앉아 있던 김 씨에게 사과하라는 야당의 요구에는 응하지 않았습니다.

이인규 전 지원관에 대한 재판이 끝나면 정부가 사과를 할까요? 보상을 할까요? 제발 그렇게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김 씨가 소송 등을 통해 법적 조치를 해야 하는 상황까지 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소송 기간 동안 김 씨가 받을 경제적, 심리적인 고통이 크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불법 행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국민은 다시 그 모든 것을 되찾을 권리가 있습니다. 정부가 지향하는 사회가 진정으로 '공정한 사회'라면 하루 삐빨리 김 씨와 같은 국민에게 사과하고 보상해야 합니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보상하는 것에 관심은 없고 어떻게든 색깔론을 입혀보려는 여당도 대정부 공세를 펼쳤던 야당도 김 씨의 상처를 어루만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어제 국감장에서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 있던 김 씨가 아직도 마음에 걸립니다. 저도, 여러분도 저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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