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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창의적 관문' 입학사정관제, '비리 뒷문' 되나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스피치교육업체를 운영하는 대표가 자신의 지인에게 날린 트윗을 보고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이 대표가 '아내가 명문대 입학사정관'이라며 지인에게 대입 특혜를 약속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이 일고 있죠.

 "형, 혹시 연세대 수시 접수하면 연락주세요. 저희 집사람 입학사정관인 거 아시죠? 후배 덕 좀 보시죠."

다이렉트 메시지로 지인에게 전달하려던 트윗이 공개적으로 타임라인에 올라와 퍼지면서 누리꾼들이 격분했습니다. 이 트윗이 사실이라면 입학사정관제를 사적으로 이용한 비리이기 때문입니다. 유명환 전 장관 딸 특채 특혜에 이은 또 하나의 특혜 논란인 셈입니다.

누리꾼들은 관련 기사에 '자기들끼리 해먹으로고 하는구나' '입학사정관제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공정한 사회는 없다'는 등의 비판 댓글을 달고 있습니다. 연세대 측은 트윗을 날린 대표의 부인의 업무를 정지했다고 밝혔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습니다.

문제의 트윗 캡쳐화면.

입학사정관들이 다른 마음을 먹는다면 충분히 자신들이 원하는 수험생을 뽑을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입니다.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던 우려의 목소리가 맞았네요. 입학사정관제는 좋은 제도입니다. 성적으로만 학생들을 선발하는 기존의 비인격적인 선발 방식을 벗어나 창의적인 방식을 통해 우수한 학생들을 뽑을 수 있습니다.

수치화된 학생의 성적으로는 학생의 잠재력이나 인성을 평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주관적인 평가방식 때문에 항상 공정성을 우려하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비리로 쉽게 연결될 가능성이 일반 입시방식보다 훨씬 높습니다. 오죽하면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도 이번 수시전형에서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공동으로 입학사정관제가 공정하게 운영되는지 실태조사를 벌이겠다고 했을까요. 그만큼 비리의 위험이 높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선발되려면 많은 수상 경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있는 집 학생들을 위한 제도, 학원과 과외시장만 배불리는 제도라는 비판적인 보도는 이미 나온 바 있습니다.  

정부가 확대를 강조해온 입학사정관제의 정착을 위해서는 투명한 입학사정관제 관리와 입학사정관의 전문성 확대가 모두 필요합니다. 하지만 두 가지 중 어느 것 하나도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지난해 정부 예산을 236억원이나 지원받아 입학사정관제를 실시한 47개 대학을 평가한 대교협 보고서에 따르면 전임 사정관은 전체의 11%, 그 가운데 4분의 3이 비정규직이었습니다. 전문성 확보는 기대하기 힘든 현실입니다.

교육과학기술부 홈페이지(http://www.mest.go.kr/me_kor/index.jsp) 캡쳐화면.



또한 이번 트윗 파문에서 드러났듯이 주관적인 기준이 비리, 특혜가 되는 것을 막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합니다. 만약 이런 장치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입학사정관제는 친인척 비리보다 더 큰 문제가 될 겁니다. 자신의 지인들과 또 그 지인들만의 잔치가 될 뿐입니다.

공정성과 전문성 모두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대입 정원의 60%인 수시전형을 입학사정관제로 바꾸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교육은 속도전이 아닙니다. 백년지대계입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빨리 먹으면 체합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빨리 가다가는 탈이 나게 돼있습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국민들이 우려하는 입학사정관제의 문제점을 면밀히 검투하고 보완해야 합니다. 제도의 확대는 그 다음 일입니다. 창의적인 학생들을 뽑는 관문이 비리의 뒷문이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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