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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야기

핵심 증인 불출석, 벌써 김 빠진 청문회

다음주부터 김태호 국무총리 내정자를 비롯한 주요 장관 내정자의 인사청문회가 시작됩니다. 23일에는 이재오 특임장관 내정자와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 등의 청문회가 있을 예정이고, 24~25일에는 김태호 국무총리 내정자가 24일에는 신재민 문화체육관광장관 내정자가 국회에서 자질 검증을 받습니다.

인사청문회는 말 그대로 국회의원이 국민을 대표해서 인사의 도덕성과 자질 그리고 정책 수행 능력을 골고루 평가하는 자리입니다. 내정자들이 어떤 흠결이 있는지 국민 앞에서 낱낱이 밝혀 국민들이 내정자에 대한 적격, 부적격 판단을 내리게 하는 제도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야당은 이미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내정자들의 도덕성과 자질에 의문을 제시해 왔습니다. 위장전입 문제나 부동산투기 의혹, 세금 탈루 의혹 등이 그것이죠. 이 문제는 청문회에서 확실히 따져 물어야 할 겁니다. 청문회를 통해 국민의 법감정과 상식에 어긋난다고 판단된 인사들은 자진 사퇴를 하거나 인사권자가 내정 철회를 해야 합니다. 그만큼 청문회는 내정자들의 거취 문제가 달린 중요한 자리입니다.

국민을 위한다는 여야가 이번에는 정파에 구애받지 말고 철저한 검증을 위해 노력해야 할 텐데요. 안타깝게도 청문회를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김이 빠져버린 모양새입니다. 내정자들의 자질 검증에 꼭 필요한 핵심 증인들이 불출석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신임 국무총리로 내정된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8일 오후 서울 광화문의 한 오피스텔에 들어서며 취재진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남소연


김태호 총리 내정자의 최대 쟁점은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입니다. 김 후보자는 지난해 박연차 전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은 바 있습니다. 지난해 검찰은 경남지사이던 김 후보자가 2007년 미국 뉴욕을 방문했을 때 박 전 회장이 '한인식당 주인 곽모씨를 통해 수만달러를 건넸다'는 진술을 듣고 수사에 나섰지만 식당 주인 곽 씨는 검찰조사에서 '종업원이 돈을 전달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이 종업원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한 채 수사를 진행하다가 흐지부지 됐습니다.

이에 대해 야당은 검찰의 수사가 불충분했다고 판단했고 청문특위는 연차 전 회장과 식당 주인 곽 씨를 증인으로 채택했습니다. 돈을 준 당사자의 진술을 통해 의혹을 밝힐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 겁니다.

하지만, 박 전 회장은 건강이 안 좋다는 이유를 내세워 청문회에 나갈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곽씨는 이번 개각 직후 행방이 묘연하다고 합니다. 또한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와 관련해 증인으로 채택된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도 불출석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가 7월 29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이재오 당선자에게 축하꽃을 달아주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남소연


핵심 증인의 불출석은 또 있습니다. 이재오 특임장관 내정자의 연임로비 의혹 규명에 중요한 인물인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도 해외 출장을 이유로 역시 불참의사를 밝혔습니다. 다른 내정자 청문회 증인들 중에도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된 인사들의 불출석 문제는 고질병에 가깝습니다. 제가 그동안 봐왔던 청문회에서 증인 채택은 여야의 기싸움으로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고 설령 증인으로 채택됐다고 해도 핵심 증인은 늘 '몸이 아프다' '해외에 있다' 등의 이유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증인들이 불출석하면 징계를 받습니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은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을 거부한 증인에 대해선 3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 법률에 의거해서 처벌받은 일은 거의 없습니다.

내정자들의 자질 검증에 없어서는 안 될 증인들이 불출석 하면서 청문회는 시작하기도 전에 '앙꼬 없는 찐빵'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불출석 문제가 반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실질적인 처벌을 하지 않는 국회와 정부도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겁니다.

여야는 이번 기회에 실효성 있는 청문회 증인 불출석 방지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증인 불출석은 내정자들의 자질 검증을 포기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은 정작 가려운 곳은 긁지 못하고 긁는 시늉만 하는 답답한 청문회를 바라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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