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도 배낭은 2주 전보다 더 뚱뚱해졌다. 희한한 일이다. 라오스의 추억이 배낭 속으로 스며들었나 보다.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하고 싶은데 인사를 받아줄 사람이 없다.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 낡은 선풍기와 텔레비전에게 힘없이 손을 흔들고 로비로 내려왔다.
식료품 바구니를 연결한 장대를 어깨에 얹고 걷는 아주머니들.
활기찬 비엔티엔 거리.
오늘은 청년 대신 키가 작은 아주머니가 카운터에 앉아 있다. 배낭을 맡아달라고 부탁하고 밖으로 나왔다. 어제는 없었던 아주머니들이 식료품 바구니를 연결한 장대를 어깨에 얹고 총총 걸음으로 남푸 분수 쪽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그 뒤를 마치 한 일행이나 되는 것처럼 툭툭과 승합차의 행렬이 따라간다. 맞은 편에서 달려오는 오토바이들은 이쪽 저쪽 몸을 흔들면서 차량을 피해갔다.
도로 위에서 빗자루를 팔고 있는 여성.
다시 하루가 시작됐다. 어제 흘러간 하루처럼 사람들은 바쁘게 거리를 지나갔다. 서글프다. 내일이면 나는 이 거리에 없겠지만, 모든 건 그대로겠지. 이곳 사람들의 일상에는 원래 내가 없었으니까. 내 일상에 이곳 사람들이 없는 것처럼.
버스터미널 입구에 자리잡은 상점들.
복잡한 터미널 앞 거리.
움직이자. 잡념을 떨쳐 버리려면 움직여야 했다. 남푸 분수에서 북동쪽에 있는 아침 시장 탈랏 사오(Talat Sao)로 향했다. 아침이 지나 시장이 문을 닫으면 어쩌나 하고 조바심을 내면서 걸어 가보니 장사가 한창이다. 이름만 '아침 시장'인가 보다.
뒷유리를 흙먼지로 '코팅'한 낡은 버스.
시장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버스 터미널부터 구경했다. 평일 오전이라 승객들이 별로 없다.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나라의 버스 터미널과 비슷했다. 과일을 파는 상점, 바게트 빵을 파는 상점 등 배고픔과 외로움을 달래줄 가게들이 버스 승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버스 승객들을 유혹하는 먹을 거리.
뒷유리를 흙먼지로 '코팅'한 낡은 버스도 있었지만, 쌩쌩해 보이는 미니 버스들도 꽤 많이 보였다. 버스를 보니 다시 본능이 살아난다. 기회만 있으면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싶은 '여행자의 본능'이랄까.
버스터미널 모습.
버스를 못 본척 몸을 180도 돌려 시장으로 들어갔다. 시장의 규모는 상상 이상이었다. 서울 동대문 시장처럼 옷을 파는 상점이 빽빽이 들어서 있나 싶더니 안 쪽에서는 아주머니들이 고기와 과일, 채소를 팔고 있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말고 있는 아주머니도 보이고, 국수집에 앉아 허기를 달래는 아저씨도 눈에 들어 온다. 종합시장이 따로 없다.
동대문 시장처럼 느껴졌던 재래시장 입구.
고기를 팔고 있는 가게.
시장 안에 있는 미용실.
꽃을 찾는 나비처럼 여기 저기 옮겨다니며 흥정을 하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진지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시장 풍경은 어디를 가나 비슷하다.
각종 식료품을 팔는 상점들.
과일을 파는 아주머니들.
다른 가게는 그냥 지나갈 수 있었지만, 국수집은 지나치기 힘들었다. 슬쩍 국수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가 주문도 안 했는데 척척 국수를 말아준다. 돼지껍데기가 둥둥 떠 있는 국수다. 국물은 느끼하면서도 고소했고 면발은 쫄깃쫄깃했다. 후루룩 후루룩 세 번만에 면을 먹어 치우고 국물을 목 뒤로 넘겼다. 하아~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온다. 그순간 시장 구경은 머리 속에서 사라졌다.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 있는 사람처럼 나는 '득템'보다 '먹을 거리'에 감동해 버렸다.
즐겁게 국수를 먹는 사람들.
느끼하고 고소했던 국수.
국수를 말아준 아주머니.
아주머니에게 국수값 1만 낍을 계산하고 '싸바이디~' 인사를 했다. 아주머니는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웃으면서 '싸바이디~'라고 한다. 혹시 라오스 사람인줄 알알던 내가 어색한 라오스말을 하는 걸 듣고 놀랐나.
아이들 책가방을 파는 상점.
시장 근처 인도는 노점이 차지하고 있었다.
시장을 떠나 근처 쇼핑몰에 들어갔다. 2007년에 완공된 최신식 탈랏 사오 쇼핑몰이었다. 가운데가 뻥 뚫린 타원형 모양의 쇼핑몰에는 액세서리, 기념품, 의류 등이 손님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하지만 가격이 비싼서 그런지 재래시장보다 손님이 없다.
한국 DVD를 구경하고 있는 승려들.
DVD 가게 한쪽 벽면을 채운 한국 드라마 DVD.
조용한 쇼핑몰 분위기에 기운이 빠져 나가려는데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 보인다. '어, 송혜교다!' 그 위에는 이다해, 그 옆에는 이영애다. 반가운 얼굴들이다. 한국 드라마 DVD가 라오스에도 있을 줄은 몰랐다. DVD 가게에는 한 벽면 전체가 한국 드라마 DVD로 채워져 있었다.
비엔티엔 서쪽 거리.
내가 사진을 찍으면서 관심을 보이자 내 뒤에 있던 승려들이 다가와 한국 드라마 DVD를 번갈아 들어본다. 한참을 들여다 보더니 이다해가 출연한 '추노' DVD를 한 장 사서 나간다. 신기했다. 승려들도 한류에 빠졌나 보다. 아니면 탤런트 이다해에게 빠졌거나. 신세대 승려들이다. 그런데 사원에도 DVD 플레이어가 있을까.
도로 위에서 본 티코.
물건을 어깨에 짊어지고 걷는 여성들.
한국 배우들을 실컷 구경하고 쇼핑몰 밖으로 나왔다. 벌써 오후다. 이제 라오스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5시간 밖에 안 남았다. 이 조바심. 이 무력감. 오랜만에 느껴본다. 10여년 전 군대에서 4박 5일 첫 휴가를 나왔다가 복귀하는 심정이다.
즐겁게 시소를 타는 아이들.
그늘 아래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
이번에는 메콩강변 공원길을 따라 서쪽으로 올라갔다. 잔디가 듬성 듬성 자라고 있는 공원 공터에는 사람들이 돗자리 위에서 쉬고 있었다. 친구끼리, 연인끼리, 가족끼리 그늘 아래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모습이 기분 좋다. 공원 놀이터에는 어린 자매가 시소를 타고 있었고 대여섯명의 아이들은 미끄럼틀에서 놀고 있었다. 모두들 신났다. 아이들은 내 마음을 알까. 이 타들어 가는 마음을.
땡볕 아래 서있는 건설장비들.
그러나 흐뭇한 풍경은 곧 사라졌다. 땡볕에 버티고 서있는 건설장비들이 불청객이었다. 건설기계들은 금방이라도 사람들 쪽으로 달려올 것만 같았다. 메콩강변을 중장비들이 휘젓고 다닐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발전이라는 목표에 라오스도 얼마나 많이 시달릴까. '세계에서 제일 나른한 수도'라는 수식어가 비엔티엔 앞에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야외 테이블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 사람들.
이제는 여행을 정리해야 할 시간. 근처 북카페에 들어가 아이스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2주일 동안 수첩에 적어둔 메모를 정성스럽게 훑어봤다. 이렇게 행복했구나. 즐거웠구나.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일주일 동안 동고동락한 대봉, 우연히 재회했던 니콜, 부산에서 소주 한 잔 하기로 한 안젤라, 서울에 꼭 오겠다던 아돌 그리고 한류에 흠뻑 젖어 있던 태국 커플까지. 그립다. 너무나 소중한 인연이다.
턱수염의 감촉도 느껴봤다. 까칠까칠, 따갑다. 여행하는 동안 제법 자랐다. 내 마음도 이만큼 성장했을까.
강변에 펼쳐진 테이블.
날이 벌써 어두워진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걸어나가 보니 레스토랑 야외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앉아서 비어 라오와 함께 여유로운 저녁을 먹는다. 오늘 비행기를 타는 사람은 없는 게 분명했다.
분위기 좋은 야외 레스토랑이 들어섰다.
발길을 강변으로 돌렸다. 우와~ 카페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안 보이던 테이블 수십 개가 공터에 놓여져 있었다. 그 앞에서는 아주머니들이 철판 위에 고기와 생선을 올려 놓고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군데 군데 자리를 잡은 트럭에서는 국수나 볶음밥을 만든다. 누가 마법을 부린 것처럼 순식간에 분위기 좋은 야외 레스토랑이 들어섰다.
생선을 굽고 있는 아주머니.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어제 저녁을 마지막 만찬으로 여겼던 내가 틀렸다. 나도 모르게 테이블 앞에 앉아 비어 라오와 계란야채볶음밥을 주문했다. 얼른 먹고 가야지. 그때 누가 나를 향해 말을 건넨다.
"안녕~ 혼자 왔어요? 같이 먹을까요?"
"아, 좋아요!"
합석을 제안한 독일 청년 우베.
착하게 생긴 서양 남성이 내 앞에 앉았다. 이 남성은 독일 청년 '우베', 스포츠용품 판매점에서 일하면서 암벽 등반을 즐긴단다. 여행을 온 건 같았지만, 남은 시간은 달랐다. 나는 곧 라오스를 떠나고 우베는 일주일이나 더 머물 예정이었다. 우베는 앞으로 돌아볼 곳에 대해 얘기했고, 나는 2주 동안 돌아본 곳에 대해 말해줬다. 내 표정이 시무룩했는지 우베가 뭐라고 한다.
"정호~ 돌아가기 싫구나? 괜찮아. 언제든지 다시 떠나면 되잖아. 일상으로 돌아가야 다시 여행을 시작할 수 있는 거야. 슬퍼하지마~"
떠나기 전 기념촬영, 찰칵!
딱딱한 영어 액센트로 나를 위로하는 우베. 고맙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음식을 다 먹고 작별인사를 하려고 하는데 우베가 기념촬영을 하잖다. 찰칵~ 카메라 셔터 소리가 구슬프게 들린다.
우베를 남겨두고 숙소로 돌아와 배낭을 찾았다. 카운터는 아직도 아주머니가 지키고 있었다. 아주머니에게 인사하고 나와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툭툭에 얼른 올라탔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공항으로 가달라'고 말하는데 아주머니가 밖으로 나와 손을 살살 흔든다.
깊어가는 비엔티엔의 밤.
깜짝이야. 툭툭 기사 아저씨는 내가 시간이 없는 줄 알았나 보다. 툭툭은 내가 손을 흔들기도 전에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 나간다. 비엔티엔의 빌딩과 도로와 사람들은 나를 지나 멀어져갔다. 붙잡고 싶어도 붙잡을 수 없는 풍경이다.
어느새 시끄럽게 울어대던 툭툭이 멈춰섰다. 공항이었다. 사람들은 공항 입구로 빨려들듯이 들어갔다. 그래, 다시 떠나면 된다. 돌아가야 다시 떠날 수 있잖아. 우베의 딱딱한 영어 액센트가 툭툭의 엔진소리 대신 귓가에 맴돈다.
아름다운 남푸 분수의 야경.
흔들리는 툭툭에서 찍은 거리.
아, 이 바람. 따뜻하고 부드러운 밤공기. 첫날 밤 비엔티엔 땅 위에서 나를 간지럽혔던 그 바람이 다시 나를 감쌌다. 우울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그날 밤처럼 설렌다.
그래, 다시 떠나면 된다. 나는 배낭을 어깨에 짊어지고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비엔티엔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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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나보자. 부러워서 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
멋진 작품을 계속
그것을 살 여유가 없습니다.
좋습니다, 그것을 사겠습니다
당신은 훌륭한 작가예요, 진정으로 더 많은 독서에서 내게 매우 흥미를 만드는 등의 방법으로 단어를 넣어하는 방법을 알고.
상당히 좋은 내용, 게시물의이 종류는 확실히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한명과 함께 좋습니다.
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