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노트] 눈 내리는 해수욕장에 서다

나의 이야기 2008.02.01 15:58 Posted by 오마이뉴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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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오전 9시. 버스에 올랐다. 신문 파는 곳도 음료수를 파는 가게도 없는 화정버스터미널을 떠난 버스에는 콤비를 차려 입은 중년 남자와 야구 모자를 쓴 20대 커플만 자리를 잡고 있었다. 화요일 아침은 모두에게 허락된 시간은 아니니까.

몇 번이고 신호등 앞에 멈춰섰던 버스는 어느새 서울외곽순환도로를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장한나의 첼로 소리는 깊고 애절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했을 그녀를 떠올리며 나도 신경을 곤두세워 CDP에 귀를 기울였다. 마냥 어린 꼬마일 것 같던 그녀도 이제 철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다. 시간 참 빠르다.

눈이 온다. 잠깐 졸았나보다. 대관령이라는 표지판이 어른거리나 싶더니 생각지도 않았던 눈이 온다. 함박눈이다. 역시 일기예보는 믿을 게 못 된다. 어젯밤에 체크한 날씨정보와 딴판이다.

강릉은 온통 새하얗다. 쉴새없이 내리는 눈 때문에 버스터미널을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산 하나 사면서 괜한 투정을 부려본다.

"오늘 눈 온다고 했었나요?"
"눈 온다는 얘기가 없었는데 아침부터 오네"

우산을 건네주는 아줌마의 목소리는 밝았다. 나 말고도 몇이나 더 우산을 사갔을까.

천백원. 경포해수욕장으로 향하는 버스에 천원짜리 한 장과 백원짜리 하나를 밀어넣었다. 해수욕장까지 20분 정도 걸린단다. 생각지도 않은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던 버스는 생각지도 않은 엄청난 속도로 눈길을 헤쳐나갔다. 뿌연 창 넘어 낡은 건물과 그 앞을 종종 걸음으로 걷는 행인들이 보인다. 그리고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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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있을 때 지겹게 봤던 놈이다. 보급로 끊기면 굶어 죽는다고 닦달하던 행정보급관의 호령에 새벽부터 눈을 치웠다. 길게 늘어서 넉가래로 밀고 빗자루로 쓸었다. 그러다 뒤를 돌아보면 다시 쌓여 있던 눈. 겨울마다 반복되는 노동이었다.

안내방송이 지겨워질 때쯤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벌써 발빠른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오늘 만큼은 백설장이다. 모래 대신 눈이 해변을 차지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튼튼한 신발로 신고 오는 건대. 천으로 만든 캔버스화는 눈에 파묻혀 금새 젖어버렸다. 검정색 모직코트도 눈의 습기를 쭈욱 빨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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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이라도 해변을 덮칠 듯한 성난 파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얼굴색 하나 변치 않는 모래 위의 눈. 그리고 흰 눈을 바닷가로 계속 뿌려대는 심술궂은 잿빛 하늘. 서로 으르렁대는 모습이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사람들도 이렇게 기뻐하지 않나.

사실 그동안 내가 찾았던 바다는 이렇지 않았다. 항상 밝고 따뜻했었다. 나를 위로해주고 내게 희망을 주는 바다였다. 날씨가 변하니 바다도 변했다. 아니, 내가 변하니 바다도 변한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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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게 갠 하늘 아래 바다보다 더 드라마틱한 바다였다. 한참 날던 새 몇마리도 파도가 핥고 간 모래 위에 앉아 바다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한가로운 새와는 달리 사람들은 바빴다. 자세를 바꿔가며 사진을 찍는 연인들, 가족들, 친구들은 행복해 보였다.

혼자인 나도 한 커플에게 사진기를 부탁해 흔적을 몇 장 남겼다. 웃었어야 했는데... 사진 속 내 모습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발이 시려워서 그랬나. 마음이 시려워서 그랬나. 잘 모르겠다.

눈은 계속 내렸고 파도는 거칠었다. 사람들은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눈 내리는 해수욕장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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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부럽다... 2008.02.05 22: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럽네요.. 사진 크게 올려주시면 더 좋았을걸 ~

  2. Jaycee 2008.02.06 08: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사진 정말 멋있네요~^ㅡ^
    켈리포니아는 산꼭데기에만 눈이와서 아쉽다는ㅎㅎ
    1년 365일 따뜻해서 왠지 이상해요//
    다른 사람들은 날씨 좋구 살기 좋다구 하지만요..ㅋㅋ
    한국은 4계절이 또렷해서 멋진듯~

  3. 리나 2008.02.29 11: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카프카님....우연히 무언가를 찾다가 방문했어요
    습관처럼 눈팅만 하다가 가려다....대문에 보이는 훈남필 훈훈한
    미소와...내가 넘 좋아하는 스타벅스커피(된장녀로 오해받을까 두려움)이야기에 발목 잡히네요...저는 플래닛을 합니다
    저장창고예요 ㅋㅋㅋ

    멋진 이웃님이라 흔적을 남길수 밖에 달리 방도가 없네요^^*

  4. 리나 2008.02.29 12: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카프카님....우연히 무언가를 찾다가 방문했어요
    습관처럼 눈팅만 하다가 가려다....대문에 보이는 훈남필 훈훈한
    미소와...내가 넘 좋아하는 스타벅스커피(된장녀로 오해받을까 두려움)이야기에 발목 잡히네요...저는 다음 플래닛을 합니다
    저장창고예요 ㅋㅋㅋ열심히 안해용 ㅠ

  5. 리나 2008.02.29 1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미치겠당.. 댓글 수정도 삭제도 안돼넹...
    무신 댓글하나 쓰는데 패스워드까징?
    비번이 틀렸다고 계속 오류나오공 ㅠㅠ

    어케하죠? 초면에 실례를 하고 실수에...왠 챙피?

    지송해요 ㅠ

  6. 조용형 2012.01.03 11: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팹, 훌륭한 문서입니다

  7. 고명진 2012.01.07 03: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8. 여름 2012.04.04 01: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죄송합니다.

  9. 페이지 2012.05.08 20: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10. 아멜리아 2012.05.10 23: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채식주의자입니다.

  11. Wholesale Beanies 2013.02.04 12: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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